시진핑 ‘반부패 투쟁’ 10년… 측근 겨냥한 칼, 리더십 흔들

입력 2023-10-29 00:01 수정 2023-10-29 09:50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14기 1차 회의 제5차 전체회의에서 손뼉을 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리창 신임 총리가 이끄는 새 내각의 부총리, 국무위원 등에 대한 인선이 이뤄졌다. AFP연합뉴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한 2013년 이후 중국에선 대대적인 부패 척결 바람이 불었다. ‘호랑이’(고위 관료)와 ‘파리’(하위직) 잡기로 시작된 부패와의 전쟁은 ‘여우’(해외 도피 사범) 사냥으로 확대됐고 부동산, 사교육, 의료계 등을 거쳐 최근에는 군 내부와 기술 분야를 정조준하고 있다. 중국 최고 사정기관인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지난 10년간 조사한 부패 사건만 464만8000건이 넘고 20만7000명의 중앙·지방정부 공무원들이 처벌을 받았다. 조사 대상에 오른 차관급 이상 고위 관료만 553명에 달한다. 부패 근절 활동은 여론의 지지를 받았고 시 주석의 정적을 제거하는 효과도 거뒀다.

시진핑 집권 3기 반부패 투쟁은 흔들려서도, 멈춰서도 안 되는 것이 됐다. 시 주석은 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한 지난해 10월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개막식에서도 “부패는 당의 생명력을 위협하는 악성 종양이고 부패 척결은 가장 철저한 자기혁명”이라고 강조했다.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심장병으로 27일 상하이에서 향년 68세로 사망했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1, 2기 경제를 이끈 리커창 전 총리는 올해 3월 퇴임했다. 사진은 2021년 9월 3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연설하는 리 전 총리의 모습. AFP연합뉴스

그런데 사정 칼날이 시 주석 측근들로 향하면서 리더십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고위 관료들의 잇단 실각에 이어 한때 시진핑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리커창 전 중국 총리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중국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이로써 장쩌민의 상하이방, 리 전 총리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등 시 주석을 견제했던 파벌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친강과 리상푸의 몰락

친강 전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3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연례회의를 계기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지난 24일 리상푸의 국방부장, 국무위원,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을 모두 면직한다고 밝혔다. 리 부장은 지난 8월 29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평화안보포럼을 마지막으로 돌연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부패 문제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중국군이 지난 7월 부패 신고를 받는다는 통지를 발표한 뒤 전략 미사일과 항공우주 전력을 담당하는 로켓군 수뇌부들이 교체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 부장도 사라진 것이다. 그는 장비발전부장 재임 시절인 2018년 러시아산 무기를 불법 구매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라 있었다. 그런데도 시 주석은 지난 3월 그를 국방부장에 앉히며 두터운 신임을 보여줬다.

시 주석은 군 전체 규모를 축소하는 와중에도 로켓군은 빠른 속도로 보강했다. 시 주석은 중국 건군절(8월 1일)을 앞두고 왕허우빈 전 인민해방군 해군 부사령관을 로켓군 사령관으로, 남부전구 출신 쉬시성을 신임 정치위원으로 임명했다. 한 부대의 사령관과 정치위원을 동시에 교체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부패 문제로 2015년 종신형을 선고 받은 저우융캉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가 낙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민무장경찰무대에서도 비슷한 인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시 주석은 군에 대한 대한 통제권을 강화했음에도 당에 대한 군의 충성심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불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반란 시도를 지켜보면서 군 통제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상푸에 앞서 사라졌다가 면직된 친강 역시 지난해 말 주미 대사에서 외교부장으로, 다시 국무위원으로 초고속 승진하며 시 주석의 각별한 신임을 받던 인물이다. 시 주석은 ‘늑대 외교’의 상징인 친 부장과 미국의 제재 대상인 리 부장을 집권 3기 외교·국방 투톱으로 내세우면서 대미 강경 노선을 분명히 했다.

이들의 실각은 시 주석에게는 상당한 타격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28일 “시 주석이 이들을 직접 제거했다면 만천하에 인사 실패를 인정한 것이고 다른 세력에 의해 축출당한 것이라면 10년의 정적 제거에도 권력 기반이 불안정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 주석은 자신의 정치적 충복들로 구성된 이너서클에 더욱 밀착하고 의사 결정은 중앙집권화돼 정치의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군 내부의 고위 부패 근절까지는 아직 갈 길이 남았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20차 당 대회 이후 2차 사정작업…“새로운 종류 부패 늘어”

중앙기율위는 최근 과학기술부, 공업정보화부 등 5개 부처와 자동차·철강·조선·항공 분야 26개 국영기업을 대상으로 한 부패 조사에 들어갔다. 시진핑 집권 3기 들어 진행되는 두 번째 반부패 투쟁이다. 앞서 중앙기율위는 지난 3~9월 금융, 스포츠, 의료 분야에서 사정 작업을 벌여 140여명의 국유기업 관리들을 붙잡아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차관급 고위 관료 최소 36명이 낙마했다.

중앙기율위 대변인은 지난달 홈페이지에 공개한 인터뷰에서 새로운 반부패 5개년 계획을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아직 부패의 진상을 파헤치지 못했는데 새로운 종류의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부패 문제를 연구해온 앤드루 웨드먼 미국 조지아주립대 교수는 SCMP에 “시 주석은 부패 문제와 관련해 더이상 장쩌민이나 후진타오 등 전임자들을 탓할 수 없게 됐다”며 “반부패 운동을 계속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