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의 핵심이었던 모수 개혁을 뺀 ‘맹탕’ 종합운영계획이 공개됐다. 공은 결국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정부가 시나리오도 제시하지 않은 채 사실상 ‘원점 재논의’를 선언한 만큼 개혁 논의는 내년 총선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건 국민 공론화 과정을 통해 논의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그동안 개혁 과정을 보면 정부가 보험료율(내는 돈)이나 소득대체율(받는 돈) 수준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해왔는데, 제대로 된 성공이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이번에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는 것보다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9일 열린 재정계산위원회는 위원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복지부에 24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때문에 복지부 역시 단일안을 내기 어렵다는 예상이 나왔지만, 정책 실현이 가능한 시나리오로 압축조차 하지 못했다. 조 장관은 “현재 국회 연금특위에서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구조개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결과에 따라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은 달라질 수 있으므로 그 논의와 연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회 연금특위의 논의 역시 지지부진하다는 데 있다. 지난해 7월 구성된 연금특위는 올해 4월 30일까지 운영할 예정이었지만, 두 차례 연장해 활동 기간이 총선 이후인 내년 5월까지로 미뤄졌다. 연금특위도 올해 상반기에 모수 개혁안을 담지 못하고 복지부 종합계획 발표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는데, 복지부가 다시 국회로 공을 넘긴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본격적 논의는 내년 총선 이후에나 이뤄질 전망이다.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안’이 유력한 만큼 연금개혁을 총선 직전에 강하게 추진하는 건 여야 모두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 총선 이후에도 개혁은 불투명하다. 의석수에 따라 논의에 속도가 붙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합의안 도출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총선 이후엔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도는 만큼 개혁 동력이 약해질 가능성도 있다.
참여연대, 양대 노총 등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은 이번 종합계획안에 대해 “단일안은커녕,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등의 핵심적 숫자는 아무것도 없고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되는 맹탕 연금개혁안”이라며 “윤석열정부는 3대 개혁으로 연금 개혁을 제시했음에도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고 연금 개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