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제국주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매춘’ 표현을 사용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노정희)는 26일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박 교수는 2013년 펴낸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를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로 묘사했고,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강제 연행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허위 사실을 서술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5년 12월 기소됐다.
박 교수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35개 표현 가운데 ‘강제 연행이라는 국가폭력이 조선인 위안부에 관해 행해진 적은 없다’ ‘위안부는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을 포함한 11개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인정했다.
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그런 부류의 업무에 종사하던 여성이 스스로 희망해 전쟁터로 위문하러 갔다’든가 ‘여성이 본인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고 보는 견해는 ‘사실’로는 옳을 수도 있다”고 썼는데, 이 대목도 허위 사실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2심 재판부는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분야에서 통상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밝혔다.
또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춰 보면 박 교수가 일본군에 의한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 행위를 했고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일제 위안부 피해에서 일본의 책임을 부인하지 않았고, 제국주의나 가부장제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어 일본의 책임에만 주목해 갈등을 키우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 의식을 부각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일본군 위안부의 전체 규모나 조선인 비율에 비춰 조선인 위안부를 구성원 개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거나 균일한 특성을 가진 집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에서 각 표현이 피해자 개개인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의 진술에 해당한다고도 보기 어렵다”며 “‘공적 강제 연행’에 관한 표현은 학문적 개념 포섭을 전제한 것으로, 사실 적시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검사가 증명해야 한다”며 “(박 교수가 저서에서) 통상의 연구윤리를 위반했거나 피해자들의 자기결정권,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을 경시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