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 정착민 보복을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도 우려를 표명하며 진정시키라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확전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앤서니 앨버리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는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하는 극단주의 (이스라엘) 정착민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는 중단돼야 하며 그들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극단주의 정착민의 공격’이 하마스 공격 이후 중동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길에 휘발유를 붓는 것’이라는 표현도 썼다.
악시오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에서 이스라엘이 서안지구 상황을 진정시키고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정착민 폭력을 막지 않으면 현재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고 복수의 미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 반격 이후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 사상자 증가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당국에 따르면 하마스 공격 이후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 정착민 폭력이 더욱 심해졌고, 수십 명의 주민이 정착민에 의해 살해됐다고 한다. 인권단체들은 정착민들이 자동차에 불을 지르고 몇몇 소규모 베두인족 공동체를 공격해 다른 지역으로 대피하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 발언은 외부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대응 권리를 지지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확전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 지지가 약화할 조짐을 보이는 데다 헤즈볼라 등 이란 지원을 받는 민병단체 참전 우려가 커지자 미국 대응이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자국민 학살에 대응할 권리와 책임이 있고, 우리는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갖출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은 동등하게 안전과 존엄성, 평화 속에 나란히 살 자격이 있다”며 ‘두 국가 해법’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하마스가 비열하고 비겁하게 민간인 뒤에 숨어 있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전쟁법을 준수해 작전을 수행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며 “어려운 일이지만 이스라엘은 무고한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늘릴 필요성도 언급했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전날 유엔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작전) 중단’(humanitarian pauses)을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이 미국 요청을 받아들여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 공격을 미루기로 합의했다”고 양국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인질 석방을 위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지상전 연기를 요구했느냐는 질문에는 “아니오(No)”라고 답했다. 이어 “사람들을 안전하게 구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의 인명 피해 수치에 대해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에 대해 팔레스타인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치에 대해 확신이 없다”고 답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