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떠오르질 않아서 설교 못 합니다.”
한국교회의 대표 원로로 꼽히는 박조준(89) 갈보리교회 원로목사가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절 국가조찬기도회 설교에 나서달란 요청을 거절하며 답한 말이다. 1980년대 서슬 퍼런 신군부 독재 시절에도 목회자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권력에 굴하지 않았던 당시 그의 이런 모습은 많은 이들의 본보기가 됐다.
평생 목회 현장에서 한국교회의 개혁을, 시대 파수꾼으로서 목회자의 사명을 외쳐온 박 목사가 24일 다시금 당시 기억을 소환했다. 그는 이날 국민일보(사장 변재운)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열린 제25회 크리스천리더스포럼(CLF·회장 이병구 네패스 회장)에 주 강사로 강단에 올랐다. 행사에는 정치·경제·산업·사회 등 각계에서 활동 중인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지팡이를 짚고 강단에 오른 박 목사는 앞선 일화를 전하며 크리스천 지도자는 하나님의 대사라는 긍지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박 목사는 이날 당시 국가보안사령관 발령을 앞둔 전두환에게 안수기도해준 일화부터 미국 순방길에 동행해달라거나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를 맡아달라는 등 전두환정부의 요청을 거절한 일화 등을 전했다. 박 목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이후 정권을 잡은 당시 신군부 세력은 이 같은 자신의 거절에 숱한 외압과 협박을 해왔다고 했다.
박 목사는 “당시 ‘어디 두고 보자’는 말까지 들었지만, 전 그게 전혀 무섭지 않았다”며 “우리의 사명, 목사의 사명은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하는 것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크리스천 지도자는 누구의 눈치를 봐가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다’라는 긍지를 갖고 살아야 한다”며 “영혼의 파수꾼이라는 사명,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는 소명을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목사는 정치인뿐 아니라 사업가, 심지어 목회자까지 돈을 따르는 행태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크리스천 지도자라면 내 마음이 먼저 뜨거워야 하고, 소명을 바탕으로 가슴속에 열의와 열정이 있는 지도자라야 다른 사람 역시 뜨겁게 할 수 있다”며 “나의 이익만을 위해 살지 말자”고 강조했다.
구순을 앞둔 박 목사는 이날 내내 이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하나님 주신 소명에 확신하며, 남을 위한 삶을 살자고 당부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