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감전사’ 하청 5명 기소…원청 한전 직원들은 ‘무혐의’

입력 2023-10-25 10:53
대검찰청 사진. 연합뉴스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봇대에서 홀로 작업하다 감전돼 숨진 고(故) 김다운씨 사건과 관련해 하청업체 관계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원청업체인 한국전력은 안전조치 주의 의무가 없는 발주자였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검 여주지청은 지난달 19일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하청업체 관계자 A씨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A씨 등은 2021년 11월 5일 경기도 여주의 한 신축 오피스텔 전기공급 작업에 김씨를 홀로 투입시킨 뒤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당일 오후 4시쯤 10m 높이 전봇대에서 고압선에 달린 전류 개폐기를 올리는 작업을 하다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상반신에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사고 19일 만에 결국 숨졌다.

작업 당시 김씨는 안전 장구도 충분히 갖추지 않은 채 혼자 전봇대에 올라가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작업은 절연 처리가 된 고소 작업차인 ‘활선 차량’을 동원해 2인 1조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검찰은 또 A씨 등이 김씨에게 고무 절연장갑을 지급하지 않고, 사전 작업 계획서를 쓰지 않는 등 안전 관리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와 함께 하청 업체 간의 불법 재도급이 이뤄진 정황도 포착됐다. 한전이 제출받은 작업 통보서에는 실제 작업을 맡은 김씨 소속 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명이 적혀있었다. 사고 당일 오전 인력 문제 때문에 현장 소장끼리 김씨 업체 쪽에 재도급하기로 합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와 같은 업체에 소속된 직원 2명은 사고 후 산업재해 보상보험 처리를 위해 재하청 사실을 숨기고자 김씨가 하청업체에 의해 정상적으로 파견된 것처럼 관련 서류를 위조한 혐의도 받는다.

앞서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혐의로 한전 직원 A씨를,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한전 직원 B씨를 불구속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에 대해 모두 불기소 결정을 했다.

검찰은 건설 공사 발주자 지위에 있는 한전이 이번 사고에서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증거 불충분’을 불기소 이유로 밝혔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 사망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시 외부 업체에 일감을 주는 건설공사 발주자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대해 유족 측 대리인인 류하경 변호사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이 사건 공사를 총괄 관리하는 한전은 발주자로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죽거나 다쳤을 때 처벌받게 되어 있다”며 “그럼에도 검사가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을 불기소 결정해 유족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재수사를 요청하면서 수원고검에 항고장을 제출한 상태이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