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가자지구 확전 시 이스라엘과 레바논 등에 거주하는 60여만 명가량의 미국인을 대피시키는 ‘컨틴전시 플랜’을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것이지만, 확전 가능성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진지한 우려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외신은 해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정부 비상 계획에 정통한 4명의 관리를 인용해 “조 바이든 행정부는 가자지구 유혈 사태를 억제할 수 없는 경우 수십만 명의 미국 시민이 중동에서 대피해야 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미국이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지상전 강행을 대비하면서 나온 것이라고 WP는 전했다. 미국은 지상전이 시작되면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의 즉각적 개입 등으로 확전 가능성이 커져, 이스라엘과 레바논 거주 미국인에 대한 위험이 증폭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대규모 인원을 긴급히 이주시키는 복잡한 물류 문제에 관심을 돌렸다고 WP는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이것(헤즈볼라 참전)은 진짜 문제가 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까 봐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해당 지역 미국 시민을 모두 대피시키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것이며, 미국은 다른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미 당국자는 전했다. 국무부는 하마스 공격 당시 이스라엘과 레바논에 각각 60만 명, 8만6000 명가량의 미국 시민이 있었던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모든 상황에 대해 계획을 세우지 않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했다.
WP는 “미 고위 당국자들은 역내 미국인들 사이에서 공황을 일으키지 않도록 비상 계획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걸 원치 않았다”며 “그러나 최근 며칠 동안 그들 자세는 다른 행위자들이 분쟁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전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무부는 지난주 “전 세계 여러 지역의 긴장 고조, 테러 공격 가능성, 미국 시민과 이익에 반하는 시위 또는 폭력 행위 우려가 있다”며 전 세계 모든 미국 시민에게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고했다.
중동 주둔 미군에 대한 공격도 확대 중이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크라와 시리아 주둔 미군이 지난주에만 최소 13차례의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10건은 이라크에서, 3건은 시리아에서 발생했고, 모두 로켓이나 드론에 의한 공격이었다. 공격 중 심장 마비로 사망한 사례가 1건 있었고 나머지는 피해가 없거나 모두 경미한 것이라고 라이더 대변인은 설명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 연설에서 “만약 이란이나 이란을 대리하는 세력이 어느 곳에서든 미국인을 공격하면 신속하고 단호하게 우리 국민을 보호하고, 미국 안보를 지킬 것”이라며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말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