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무 “이스라엘, 인도주의적 작전 중단 필요”…정전은 반대

입력 2023-10-25 06:01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과 관련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작전) 중단’(humanitarian pauses)을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반격권을 강력히 지지해온 미국이 일시적인 공격 중단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건 처음이다. 미국은 다만 인도주의적 중단이 정전(ceasefire)과는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링컨 장관은 24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의제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하마스에 의해) 젊은이들이 참수당했고, 가족이 산채로 불태워졌다. 부모 앞에서 아이들이 처형됐다”며 “우리는 이런 공포에 대한 명시적 비난이 어디에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떤 국가도 국민 학살을 용납하거나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국가는 그런 공포가 반복되는 것을 방지할 권리가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주민을 대표하지 않고, 하마스가 저지른 학살 책임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팔레스타인 민간인은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자신을 방어할 권리와 의무가 있지만, 방식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블링컨 장관은 “하마스가 그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이스라엘은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예방 조처를 해야 한다”며 “이는 인도주의적 지원이 가자지구에 흘러갈 수 있고, 민간인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목적을 위해 인도주의적 휴전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ABC방송은 “이스라엘의 하마스 격퇴 노력에 대한 중단을 언급한 바이든 행정부의 가장 강력한 성명”이라고 설명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블링컨 장관 발언에 대해 “우리는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길 원한다”며 “일시적인 작전 중단은 일정 기간 그렇게 할 수 있는 도구이자 전술”이라고 설명했다.

커비 조정관은 또 “이는 휴전을 말하는 것과 다르다”며 “전면적인 휴전은 하마스만 이롭게 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또 인도주의적 중단과 정전의 차이는 “기간, 범위, 규모 등의 문제”라고 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금 인도주의적 중단 필요성에 대한 많은 대화가 오가고 있으며, 캐나다도 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반면 세계보건기구(WTO)는 가자지구에서 식량, 의약품, 연료 공급이 고갈되고 있다며 “즉각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구했다. 중동 국가나 중국, 러시아 등도 즉각적인 휴전이나 정전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하마스의 공격에 이스라엘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금처럼 중대한 시기에는 원칙을 명확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근본 원칙은 민간인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하마스의 공격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그러나 “하마스의 공격이 진공 상태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며 “팔레스타인인들은 56년간 숨 막히는 점령에 시달려왔다”고 언급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슬픔이 하마스의 끔찍한 공격을 정당화할 수는 없고, 그 공격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단으로 처벌받아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엑스(X·옛 트위터)에 “(구테흐스 총장 발언은) 테러주의와 살인을 이해한다는 표현”이라며 “홀로코스트 이후 만들어진 조직(유엔) 수장이 그런 끔찍한 견해를 가진 것에 진심으로 통탄한다”고 비판했다.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장관도 하마스에 의한 민간인 희생을 언급하며 “총장은 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으냐”고 비판했다. 커비 조정관도 “지금 비난을 받아야 하는 쪽은 하마스”라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