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옷은 부자나 입는다?”…짧아진 가을에 ‘가을 옷’ 실종

입력 2023-10-25 05:57
W컨셉의 자체 브랜드 '프론트로우'의 가을 재킷. W컨셉 제공

직장인 김모(25)씨는 8월부터 근 세 달 간 옷을 한 벌도 사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옷을 사려했는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가을옷을 며칠 못 입겠다는 생각에 고민이 된 것이다. 김씨는 “조금만 버티면 한겨울이 올 것 같아 최대한 있는 옷으로 버텨보려 한다”며 “요즘엔 ‘가을옷은 부자나 입는 것’이라는 농담도 한다”고 말했다.

가을이 짧아지면서 가을 옷 판매가 줄고, 겨울 옷 판매가 앞당겨졌다. 특히 올해는 9월의 온도가 이례적으로 높았던 탓에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연말이 되면 재고로 남은 가을옷이 대거 할인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지그재그는 지난 1~23일 대표적인 가을 품목으로 꼽히는 트렌치코트의 거래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감소했다고 25일 밝혔다. 반면 같은 기간 한겨울 옷인 크롭패딩은 802%, 기모바지는 133% 늘었다. 일반적으로 9~10월은 가을옷이 많이 팔리는 기간이다.

에이블리에서 판매중인 겨울 의류 상품 사진. 에이블리 제공

무신사에서도 이 기간 트렌치코트 매출이 줄었다. W컨셉에서는 가을 옷보다 양말(30%)·장갑(10%)를 비롯한 방한 용품 매출 증가가 눈에 띄었다. 에이블리에서도 겨울바지의 검색량이 260%, 양털부츠의 검색량이 155% 뛰는 등 겨울 제품에 대한 관심이 컸다.

더위가 길어지면서 가을옷을 입을 수 있는 기간이 짧아졌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평균기온은 22.6℃로, 1975년보다 가장 높게 나타났다. 평년보다 2.1도 높은 수준이다.

가을 상품 판매가 주춤하면서 대다수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9월 매출이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서울 기준으로 가을 단풍이 한창인데도 바람막이나 경량패딩 등 가을 상품이 잘 팔리지 않고 있다”며 “이 때문에 일부 브랜드들이 한겨울 제품 프로모션을 앞당기면서 가을 시즌과 겨울 시즌이 뒤섞이는 현상이 나타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봄보다 가을이 짧아지는 것이 의류업체의 매출에 더 영향이 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에는 계속해서 긴팔옷을 입지만, 반팔옷을 입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에는 긴팔옷을 새로 사야하기 때문이다.

가을 상품 재고가 많아지면서 연말에 시즌오프 세일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더위가 지속되다 갑자기 추위가 시작되니 소비자들이 언제 옷을 사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라며 “11월까지 가을옷 구매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