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송충이처럼 생긴 벌레가 한강공원 등 서울 도심 곳곳에 출몰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23일 온라인에 따르면 한강공원에서 송충이처럼 생긴 벌레를 목격했다는 글이 최근 SNS에 자주 오르고 있다. “피크닉을 하는데 하늘에서 송충이가 비처럼 내려온다” “한강 산책로에 송충이 투성이다” “캠핑장에 송충이 포화상태다” 등의 내용이다.
생김새가 비슷해 흔히 송충이로 오해받는 이 벌레는 ‘미국흰불나방 유충’이다. 지난해부터 출몰한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가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익충인 반면 미국흰불나방 유충은 활엽수 잎을 갉아 먹으며 주로 도심의 가로수·조경수·농경지 과수목 등에 피해를 주는 해충이다.
산림청은 지난 8월 말 “경기·충북·경북·전북 등 전국적으로 미국흰불나방의 밀도 증가가 확인되고 있다”며 발생 예보 단계를 ‘관심’(1단계)에서 ‘경계’(3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흰불나방이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1958년 이후 처음이다. 산림병해충 방제 규정 제6조에 따르면 경계 단계는 외래·돌발병해충이 2개 이상의 시·군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거나 50㏊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해당한다.
김민중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 박사는 “산림청 조사 결과 미국흰불나방 유충으로 인한 피해율이 지난해 12%에서 올해 27∼28%로 배 이상 증가했다”며 “올해 (유충이) 많이 나올 경우 내년에도 발생 위험이 커 발생 예보 단계를 높이는 조치를 취했다”고 연합뉴스에 밝혔다. 그는 “개체수가 늘어난 것을 이상기후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어렵지만 올해의 경우 가을철 온도가 높다는 점이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흰불나방 유충은 평균적으로 암컷 한 마리당 알 600개 정도를 낳고 죽는다. 보통 한 해에 암컷이 알을 낳고 죽은 뒤 이 알에서 부화한 2세대가 성충이 된다. 올해는 가을철 온도가 예년보다 1~2도 올라가면서 미국흰불나방 유충 2세대 성충이 낳은 알에서 부화한 3세대까지 성충이 되는 비율이 늘어났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김 박사는 “시뮬레이션 결과 예전보다 (미국흰불나방 유충) 세대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올해 개체수가 많이 나온 만큼 알 개수도 늘어나 내년에도 평년에 비해 유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미국흰불나방 유충에 대한 방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활엽수 잎에서 알을 무더기로 낳고 벌레집 안에 숨어 활동하는 종의 특성 때문이다. 특히 한강공원의 경우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살충제 등 화학약품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