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제협력재단(코이카)이 반복적으로 부하 직원들을 괴롭힌 해외 지역 사무소장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는 이유로 코이카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자들은 공개적인 모욕과 장시간 질책 등을 겪은 후 우울감을 호소하며 조직을 떠났고, 가해자는 여전히 같은 곳에서 근무 중이다.
윤석열정부는 국정과제로 ‘선진국형 국제개발협력추진’을 제시하며 내년 ODA 예산을 대폭 확대했지만, 이를 담당하는 코이카는 여전히 후진적 조직문화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코이카에서 받은 자료와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코이카 중동 지역 A사무소에서 근무하는 B소장은 지난 7월 24일 직장 내 괴롭힘 조사위원회로부터 감봉 1개월 처분과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교육 이수 명령을 받았다.
B소장은 2021년 11월 워크숍 불참 의사를 밝힌 현지 외국인 직원들에게 “사무소를 떠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떠나라”며 이직을 강요하는 등 압박성 발언을 했다.
다른 직원에게는 2022년 1월부터 6월까지 여러 차례 과도한 질책을 했다.
B소장은 한국인 직원 C의 업무상 표현을 문제 삼으며 전화로 45분간 “못 알아들으면 아는척하지 말고 말해라”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고 말하는 등 장시간 동안 꾸짖었다.
이후 C씨가 문서에 쓸 적절한 단어나 작성법을 물으면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하냐”고 비꼬았다.
이 같은 행태는 수개월 동안 이어졌다.
C씨는 “근무 기간 호흡곤란과 정신 불안, 자해 충동 등을 겪었고 심리상담을 수차례 받았다”면서 “귀국 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피해 직원들은 B소장이 평소에도 고성으로 장시간 업무와 관련해 질책하고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피해 직원들의 탄원서에는 B소장이 현지 외국인 직원들을 인종차별하는 등 인격 모독을 했다는 주장도 담겼다.
문제는 B소장의 직장 내 괴롭힘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B소장은 다른 지역 사무소장으로 근무하던 2021년 6월에도 같은 이유로 ‘견책’ 처분을 받았다.
당시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내부 비판이 나오자 코이카 상임이사진은 내부 게시글을 통해 “해당 소장에게 향후 2년간 모니터링 대상이 되며 유사 사안이 재발하면 가중처벌한다는 점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B소장은 견책 처분 후 A사무소로 전환 배치됐다. 하지만 반년도 안 돼 부하 직원에 대한 괴롭힘이 시작됐다. 코이카가 직원들에게 언급한 모니터링은 효과가 없었고, 가중처벌은 감봉 1월에 불과했다.
이번 징계 수위는 코이카 운영 기관인 외교부와 비교해도 낮다는 비판이 나온다.
외교부의 ‘2023년 재외공관 직원 징계 현황’에 따르면 부적절한 언행과 갑질을 한 직원은 정직 3월, 부적절한 언행을 한 직원은 감봉 2월의 징계를 받았다.
코이카는 B소장이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첨삭하듯이 세세하게 지도했고, 해당 발언 내용에 대해 일체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재계약을 포기한 채 회사를 떠났다. 이후에도 소장의 괴롭힘에 시달려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B소장은 징계 후 3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A사무소에서 근무 중이다.
코이카 관계자는 “B소장의 향후 근무지 변동은 기관의 인사운영 계획에 따라 검토 예정”이라며 “관련 내규를 완비했고 유사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교육과 모니터링 등 후속 조치를 충실히 이행 중”이라고 해명했다.
태영호 의원은 “코이카의 직장 내 괴롭힘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님에도 솜방망이 처벌 등 미흡한 조치로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태 의원은 이어 “정부가 글로벌 중추 국가 역할 강화를 위해 ODA 규모를 대폭 증가시킴에도 코이카 일부 직원의 도덕적 해이로 해외에서 나라 망신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외교부와 코이카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