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왜 증원 반대하나… “단순 수 늘리기는 밑빠진 독 물붓기”

입력 2023-10-18 12:32 수정 2023-10-18 12:39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에서 연 '의대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의대 정원 대폭 확대 기조를 굳히면서 의·정간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의사단체는 그동안 의사 증원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의협은 정부가 협의없이 정원 확대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파업 등 강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많은 의사들은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으론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지역의료 붕괴’ 같은 당면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의료계 문제의 핵심은 의사 수가 아니라 필수의료(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외과 등)에 지원하지 않는 의료 환경에 있는 만큼, 필수의료에 의사가 돌아오게 하는 배분 정책이 병행되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것이다.

필수·지방의료 환경 개선 함께 가야

대다수 의사들은 “필수의료 붕괴는 10년 뒤의 일인 의대 정원 증원보다 지금 당장 치료받지 못해 죽어나가는 심각한 보건 위기"라며 “지금은 의대 정원 문제 논의에 앞서 필수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범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일 때”라고 말한다.

최근 서울연구원이 공개한 2022년 서울 개인 병원 현황조사를 보면 소아청소년과는 2017년 521개에서 지난해 456개로 12.5% 줄어 감소폭이 가장 컸다. 대한소아청소녀과의사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 소아청소년과 662개가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또 지난해 7월 서울아산병원에서 뇌출혈 간호사가 수술할 의사가 없어 사망한 사건과 관련, 언론에선 의사 수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하지만 실제 국내 신경외과 전문의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33명) 보다 3배가 넘는 4.75명에 달한다. 이처럼 의사 수 부족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가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돼 있는 보건의료 제도가 문제라는 것이 의료계 입장이다.

필수 의료의 고질적인 낮은 의료 수가, 과도한 업무 부담, 의료 사고시 민형사 책임 부담 등으로 해당 분야를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필수 의료 전공의 지원 기피로 이어진다. 국회 국감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는 143명 모집에 4명(2.8%) 흉부외과 30명 모집에 1명(3.3%) 외과 72명 모집에 5명(6.9%) 산부인과 52명 모집에 4명(7.7%) 응급의학과 40명 모집에 3명(7.5%) 등 필수의료 과목이 저조했다.


지방 의료의 붕괴도 현실화된지 오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의사(10만90937명)의 29%가 서울에 있다. 또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14∼2023년 23개 진료과목 전공의 모집 정원 중 61.6%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몰렸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젊은 의사들은 전공의 수련 자체를 수도권에서 하겠다고 떠나고, 지방 병원은 당직 설 전공의가 없어 다음 세대가 또 지원 안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지방에서는 연봉 수억원을 내걸어도 의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의대 정원 증원하더라도 이런 기피과나 지방 의료에 대한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요구 조건이다. 수술, 처치 등 필요한 수가를 높이고 당직을 서는 의사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 필수 의료 도중 불가피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형사 처벌 부담을 완화하는 ‘의료사고 특례법’ 마련, 의료사고 배상 책임보험료 국가 지원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 흉부외과 전문의는 “이런 정책 병행 없이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 수를 늘려봐야, 똑똑한 의사들이 필수 의료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미용·성형 등 비필수의료에 지원할 것이고 그것마저 포화되면 해외로 나갈 것”이라며 “의사가 필수의료로 돌아올 정책을 만들지 않고 의대 증원을 하겠다는 것은 밑빠진 독에 더 많은 물을 붓겠다는 발상과 다름없다”고 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회장은 “의사 숫자는 OECD와 비교하며 증원의 논리로 내세우면서 OECD 국가 의료수가의 5분의 1에서 10분의 1 수준인 우리나라 수가의 정상화는 외면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손해를 감내하고서라도 자신이 보람을 느끼고 사명감으로 진료를 고수하던 의사는 이제는 급속이 줄어들고 있다. 의사 증원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자신이 전공한 전문 진료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의대생 증원이 됐을 때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을 것인지도 숙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파격 증원 시 건보재정 파탄 우려도

급격한 고령화도 의사 수 증원의 한 이유로 꼽힌다. 실제 65세 이상이 건보 진료비의 43%를 쓸 정도로 의료 수요가 늘고 있다. 문제는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비가 증가한다는 것. 인구 1000명당 의사 1명 증가시 의료비 22%가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다.

건보공단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 건보급여비 총액은 의사 수 현행 유지 시 333조원이지만 의사 수를 1000명 증원시 17조원, 3000명 증원시 52조원이 더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로 건보 재정이 파탄날 지경인데, 의사 수 증원이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