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25년 입시부터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과 관련해 현직 변호사가 익명의 글을 남겨 이목을 모았다.
직장을 인증한 변호사 A씨는 17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의사 형들 증원 맛 좀 봐라’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우리도 배출 정원 1000명에서 1700명으로 증원된 지 12년 됐다”면서 “금전적으로는 상위권 대기업 사무직이랑 별 차이 안 날 만큼 먹고살기 팍팍해졌다”고 주장했다.
A씨는 “그런데 법률서비스 접근성은 어마어마하게 좋아져서 이제 간단한 법률상담이나 소송 위임은 염가에 가능하고, 중견이나 중소기업도 사내 변호사를 뽑는 시대가 됐다”며 “사법고시 시절과 현재 법률서비스 퀄리티 차이가 크냐 하면 그건 전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법시험 변호사 중에서도 기본적 법리도 이해 못 하고 서면 엉망으로 쓰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변호사 시험 출신 중에서도 똑똑한 애들은 진짜 똑똑하다”면서 “전문직 증원이라는 건 아예 그 직업의 하방을 삭제해 버리는 파멸적 수준이 아닌 이상 무조건 서비스 수요자들에게 이득이라고 본다”고 했다.
A씨는 “(의사들) 그동안 꿀 많이 빨았잖아? 한잔해”라고 적기도 했다. ‘꿀 빨다’라는 표현은 일이나 생활 따위를 매우 쉽게 한다는 의미가 담긴 신조어다. 그는 이어 “중범죄자 (의사) 면허 박탈은 도대체 왜 안 되는 거냐. 우리 변호사는 음주 단속에만 걸려도 변호사협회에서 자격정지한다”고 언급했다.
해당 글을 접한 한 약사는 “약사도 1200명에서 2000명으로 증원됐는데 심야 약국 증가, 일반 약 가격 상승 억제 등 (이득이) 소비자한테 돌아갔다”고 댓글을 달았다.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서는 “그놈의 건강보험료 타령하는데 건보료 지급 항목 수정하면 되는 거고 결국 비급여 항목 가격 인하, 친절도 상승, 지방 접근성 향상 등 이득이 더 크다”고 첨언했다.
정부는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의대 정원을 현재 고2가 대학 입시를 치르는 2025년도부터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확대 폭은 1000명을 훌쩍 넘는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국립대 의대와 정원 규모가 작은 지방의 ‘미니 의대’ 중심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들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의협회관에서 긴급 의료계 대표자회의를 열고 “정부가 의대 증원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할 경우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은 모든 수단을 동원한 강력투쟁에 들어갈 것”이라며 “2020년 파업 때보다 더 큰 불행한 사태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회의에는 의협 산하 전국 16개 시·도 의사회장과 대한전공의협의회, 공중보건의사협의회,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단 등 81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했다. 회의 후 이들은 ‘전국 의사·의료계 대표자 일동’ 명의의 결의문을 내고 “정부는 의대 정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하지 않겠다는 2020년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라”고 촉구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