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처음인가요? 그렇다면 ‘일민미술관’으로!

입력 2023-10-14 00:02 수정 2023-10-14 10:48
이시 우드(Issy Wood)의 개인전 ‘I Like to Watch’ 작품 일부. 김지혜 인턴기자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전’에는 33만 명의 관객이 다녀갔고, 리움미술관의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에는 리움미술관 개관 이래 최다인 25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

관람객은 늘었지만 현대미술은 어렵다. ‘하나도 모르겠네’부터 ‘이렇게 느끼는 게 맞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현대미술을 ‘불친절한 미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두에게 어려운 현대미술, 그렇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미술관들은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관람객을 위한 전시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관람객이 편하게 문을 열어주길 바란다.
하반기 기획전 미술가 이시 우드(Issy Wood)의 《I Like To Watch》가 열리고 있는 일민미술관. 일민미술관 제공

현대미술을 친절하게 만날 수 있는 미술관들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광화문 광장 앞을 지키는 ‘일민미술관’이다. 일민미술관을 이끌어가는 윤율리 학예 팀장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았다.

현대 미술의 흐름을 읽는 것을 넘어서, ‘한국 사회’를 살펴온 중추적 미술관
일민 김상만 선생 내외분. '참된 삶'이란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에서 가능하다는 일민 선생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일민문화재단과 일민미술관이 설립되었다. 김지혜 인턴기자

일민미술관은 국내외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동시대 미술관이라 소개된다. 동시대 미술관이란 무엇인가?
온라인 포털의 뉴스 면을 펼치면 많은 사건과 사고가 빠르게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때로는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우리 세계의 크고 작은 문제들은 점점 복잡하게 서로 얽혀 가속합니다.

동시대 미술관은 크고 작은 문제들이 모이는 장소로서 지금 바깥은 어떤지를 상상하도록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어떻게 그 모으는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곳입니다. 오래된 소장품을 다시 보고 새로운 감각의 예술 작품을 경험하고 또 다양한 참여자들과 만나면서요.

서울 광화문 광장 앞에 위치한 일민미술관. 윤율리 팀장은 생동감 넘치는 광장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기에 유리한 위치라 언급했다. 일민미술관 제공

일민미술관은 광화문 네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국 근현대 역사와 정치적 역동성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100여 년 전 건축된 동아일보 사옥을 고쳐 1996년 미술관으로 재개관한 역사가 있죠. 이런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일민미술관이 추구하는 시의성과 시사성이 발생합니다.

모두에게 개방된 광화문 광장 앞에서 국공립 기관이 신속하게 실행할 수 없는 유연한 전시와 대담한 기획을 선보인다는 점이 특징이에요. 일민미술관의 대체 불가능한 역할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전시를 구성할 때 중점적으로 고려하는 부분이 있다면?
앞서 언급된 시의성과 시사성을 중시합니다. 이 작품/작가를 지금 돌아볼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와 의의가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통해 후보군을 좁혀나갑니다.

단순히 하고 싶은 전시가 아니라 해야 하는 전시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민미술관이 가장 잘 다듬어 갈 수 있는 의제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의 부분적인 특정 이념, 신념, 취향에 얽매이지 않고,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적절한 동시대 미술을 다루려는 노력도 필요하고요.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닌… ‘교육’과 ‘실천’을 위한 프로그램
일민미술관이 진행해온 프로그램. 강연, 워크샵, 퍼포먼스 등 다양한 인문학적 연계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일민미술관 홈페이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교육은 전통적인 미술관의 역할입니다. 동시대 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은 무엇을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여러 참여자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걸 어떻게 잘할 것이냐가 숙제죠.

좋은 번역서를 번역가의 입장에서 돌아보는 ‘역자 후기’는 일민미술관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젊은 세대 비평가와 관객의 만남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IMA 크리틱스’도 연 단위의 긴 호흡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민미술관 기둥서점. 일민미술관이 지향하는 시각문화에 부합하는 철학, 미학, 미술이론, 건축, 디자인 등 관련 분야 서적을 제공한다. 일민미술관 제공

최근(2023년 8월) 미술관 1층의 기둥 서점을 리모델링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네요. 좋은 예술 서적을 선별해서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전담 업무를 신설해 미술관의 출판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입니다.

프로그램 기획에 있어서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
좋은 프로그램은 미술관의 성장까지 촉진합니다. 미술관 내부 구성원과 미술관 자체에 동기를 부여하고 다양성을 증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큐레이터로서는 공들여 만든 전시를 하나라도 더 자세히 소개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어요.

좋은 미술관 프로그램은 잘 짜여진 퍼포먼스 작품과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 토크, 관객 참여 워크숍 등의 유형화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굿즈의 제작과 유통, 인스타그램을 통한 소통, 멤버십 제도의 운용까지도 넓은 범주에서 미술관 프로그램의 일부입니다. IMA 멤버십은 약간의 연회비를 내고 미술관의 모든 전시와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도록 설계된 좋은 제도입니다. 우선은 IMA 멤버십 회원들과의 만남을 늘려가고 싶습니다.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
일민미술관에서 선보인 마리아 하사비의 '투게더'. 옵/신 페스티벌 제공

2000년대 이후 서울에서 개최된 인상적인 예술 이벤트가 대부분 일민미술관을 거쳐 갔습니다. 이들이 모여 미술관의 정체성을 구성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옵/신페스티벌(예술감독 김성희)과 함께 다룬 실험적인 퍼포먼스 아트는 평소 전시만으로 충분히 소개할 수 없는 것이라 보람을 느꼈습니다. 마리아 하사비와 마틴 스팽베르크의 공연도 너무 멋졌죠.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 일민미술관을 추천한다면?
아마 모든 처음이 그렇듯 모를수록 그만큼 정확한 것을 보고 접하는 게 중요합니다.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기에 일민미술관보다 좋은 곳은 없습니다.

도심에서 가깝고 대중교통 인프라가 우수합니다. 내부에 쾌적한 카페와 서점도 있죠. 일민미술관의 모든 전시는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에 관해 질문하며 예술로부터 적절한 상상력을 찾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일민미술관은 정확한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이론적이고 모호한 언어를 피합니다. 하지만 전시의 내용을 뭉툭하게 깎아내지도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민미술관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ENTP.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이시 우드 (Issy Wood)의 개인전 ‘I Like to Watch’ 포스터. 일민미술관 제공

일민미술관은 미술가 이시 우드(Issy Wood)의 첫 한국 개인전 ‘I Like to Watch’를 선보인다. 전시는 11월 12일까지다.

이시 우드는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회화를 통해 지리멸렬하지만 한편으로는 적절히 괜찮은 동시대를 표현한다.

전시에서는 이시 우드의 글과 음악, 뮤직비디오 등도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과 회화의 무한한 변화 가능성을 함께 느껴보자.

김지혜 인턴기자

<말많은전시>는 따뜻한 미술관들의 이야기를 쉽게 기록합니다. 우리 주변을 꾸준히 지켜온 미술관들의 깊은 고민과 개성을 담아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