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스라엘 2개 전쟁 동시 발발…바이든 외교력 시험대

입력 2023-10-09 09:37 수정 2023-10-09 10:40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은 2개의 전선(戰線)을 동시에 관리해야 할 부담을 안게 됐다. 장기화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따른 북중러 밀착에 더해 중동 위기가 겹치면서 외교적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CNN은 8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은 (하원의장 해임으로) 워싱턴이 마비되고, 미국의 해외 개입 방향에 대한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2개의 국제 분쟁(우크라이나·이스라엘 전쟁)과 맞서게 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워싱턴의 기능 장애로 대통령 권위가 약화하고, 세계 강대국들이 영향력을 놓고 경쟁하는 동안 국내외 동맹을 통합해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 능력에 대한 테스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틀 연속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발표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테러에는 어떤 정당성도 없다”며 “모든 국가가 이러한 잔혹 행위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확전을 방지하기 위한 외교적 대응도 기민하게 진행됐다. 미 고위당국자는 전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요르단 압둘라 국왕과 통화했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아이작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장과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튀르키예,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이탈리아 등 주요국 외무장관과 통화했고,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부장관 직무대행은 주요 7개국(G7)과 유럽, 레바논과 접촉했다.

미국 정부는 상원 외교위를 대상으로 진행된 브리핑에서 제3자를 통해 이란이 가자지구에 직접 개입할 경우 이란에 대한 미국의 향후 이니셔티브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전쟁을 공식 선포하며 전면전을 예고해 분쟁 확대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내부적 위기도 커지고 있다. CNN은 “이스라엘에 대한 추가 지원 요청을 이행하는 것은 바이든에게 있어서 간단한 일이 아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해외 개입주의 외교 노선을 취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추가 무기 지원에 대한 대중 지지는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달 초 실시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동의한 응답자는 41%로 지난 5월(46%)보다 5% 포인트 감소했다.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 해임으로 의회 리더십 공백 상태에 빠진 것도 문제다.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은 공화당에서도 초당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이지만,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력을 공세 초점으로 삼고 있다.

하마스의 공격을 사전 감지하지 못한 미국의 오판도 리더십 위기를 키우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하마스 공격 일주일 전인 지난달 28일 미 시사지 애틀랜틱 주최 행사에서 “중동 지역은 지난 20년보다 오늘날 더 조용하다”며 “9·11 테러 이전 전임자들과 비교할 때 내가 중동 위기와 분쟁에 할애해야 하는 시간은 현저히 줄었다”고 말했다.

CNN은 “이스라엘 정보 당국의 ‘실패’는 물론 미 정부의 오판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며 “갑작스러운 이스라엘 전쟁 발발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수개월 전부터 기밀을 해제해 경고했던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평화협정을 내년 대선 외교 성과로 제시하려 한 바이든 행정부 노력도 위기에 봉착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사우디 관계 정상화를 막기 위한 게 하마스 공격의 이유일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스라엘 최악의 전쟁 날’이라는 칼럼을 통해 “이번 전쟁은 단순한 하마스-이스라엘 분쟁이 아니다. 전쟁이 불러올 충격파는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을 혼란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란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이 장기화하면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더 많은 미군 장비가 텔아비브로 전환될 수 있고, 현재로서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정상화 협상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란이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합의를 무산시키기 위해 하마스 공격을 부추긴 것으로 밝혀지면 이스라엘과 이란·헤즈볼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의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며 “여러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지원과 관심을 줄이기 위한 여러 정보 작전을 진행하기 위해 이미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 공격을 이용하고 있다”며 “서방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중동 분쟁을 무시한다고 비난하는 정보를 퍼뜨렸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