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 공격을 감행하며 최소 100명 이상의 인질을 붙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과 어린이 등은 물론 미국, 독일 등 우방국 시민들도 납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마스는 인질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울 가능성도 있어 이스라엘 군사작전이 복잡해졌다.
영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 치피 호토블리는 8일(현지시간)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00명 이상이 납치됐고, 그들의 가족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며 “인질 중에는 노인과 어린아이들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가자 지구로 끌려가는 끔찍한 사진과 비디오를 봤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방위군(IDF) 대변인 조너선 콘리쿠스 중령도 “상당한 수의 이스라엘 민간인과 군인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하마스의 공식 소셜 미디어 계정에 게시된 영상에는 무장세력이 겁에 질린 이스라엘 군인 두 명을 탱크에서 끌어내는 모습이 담겼다. 또 다른 영상에서 무장세력은 바닥에 누워있는 군인을 발로 차고 있었다.
CNN이 확인한 영상에는 맨발의 여성이 무장세력에 의해 트럭 트렁크에서 끌려 나와 차 뒷좌석에 강제로 앉히는 모습이 담겼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손목은 케이블로 묶인 것처럼 보였다고 CNN은 전했다.
미국인과 독일인, 멕시코인 등 외국인도 납치됐다. 마이클 헤르초그 주미국 이스라엘대사는 CBS뉴스 인터뷰에서 인질 중 미국인도 있느냐는 질문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숫자 등)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도 CBS뉴스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이 인질로 잡혔다는 보도가 있으며 정확한 보도인지 사실관계를 파악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알리샤 바르세나 멕시코 외무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에 “멕시코 여성과 남성이 지난 7일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에 인질로 잡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공격 시나리오에 대규모 납치 작전을 포함했다는 정황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하마스가 민간인 마을에 침투하고, 가자 지구에서 10㎞ 떨어진 우림 키부츠에서 열린 음악 축제에 난입해 참석자들을 납치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하마스 무장세력으로 보이는 이들이 여러 명의 이스라엘 포로들을 이동시키는 장면을 확인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남부 마을 나할 오즈 키부츠의 한 주민은 “마을 내부 깊은 곳까지 테러리스트들이 들어왔고, 총을 쐈다”며 하마스가 주민들을 납치하려 했다고 전했다.
콘리쿠스 중령은 “인질들이 전쟁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며 무장세력이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포로와 교환하기 위해 하마스가 납치극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마스는 2006년 지하터널을 통해 이스라엘로 침투, 서안 지역을 경비하던 군인 길라드 샬릿을 납치하고 5년여 만에야 풀어준 바 있다. 당시 하마스는 종신형을 받은 팔레스타인 포로 280명 등 모두 1027명과 샬릿을 교환했다.
이스라엘 매체 예디오트 칼럼니스트 나훔 바르네아는 “하마스가 노인과 어린이를 납치했다면 (인질 교환을 위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수용한 감옥 전체를 비워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의 대대적인 납치 작전에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대응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의 하머스에 압도적인 타격을 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들이 인간방패로 사용될 수 있는 이스라엘 민간인을 붙잡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이스라엘의 보복 여지를 억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질 문제를 전담하고 있는 하마스의 군사 조직 알카삼 여단의 아부 오바이다 대변인은 텔레그램에 “우리는 (이스라엘) 장교와 군인 수십 명을 확보했고, 그들은 가자지구 모든 지역에 존재한다”며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들에게도 일어날 것이므로 오판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가자지구에 대한 보복 공격이 인질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