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이 소유한 서울의 토지를 국고 환수하기 위해 소송을 냈지만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정부가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철종의 부친 전계대원군의 5대손인 이해승은 일제로부터 1910년 조선 귀족 중 최고 지위인 후작 지위를 받는 등 친일 행적이 인정돼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행위자로 지정됐다. 그는 1912년 ‘종전 한일 관계에 공적이 있다’는 이유로 한국병합 기념장을 받았고, 친일단체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귀족 지위와 특권을 누렸다.
소송 대상이 된 토지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임야(2만7905㎡)로 이해승은 이 땅을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1917년에 취득했다.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국권 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1904년)부터 광복때까지 일제 협력 대가로 취득한 재산은 국가에 귀속된다. 법무부는 서대문구 등의 요청에 따라 문제 토지가 국가귀속 대상인지 검토한 뒤 2021년 2월 이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회장은 이 땅을 1957년 조부 이해승에게 단독으로 상속받았다.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던 땅은 1966년 경매에 넘겨져 제일은행 소유로 바뀌었다가 이듬해 이 회장이 도로 사들였다.
법원은 이 회장 손을 들어줬다. 친일재산귀속법은 일제 협력 대가로 취득한 땅을 상속받았거나 친일재산인지 모르고 유증·증여받은 경우도 국고 환수하도록 규정하지만,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했을 경우 소유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을 두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친일재산귀속법은 제3자에 관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상속인이라고 해서 제3자의 범위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친일파의 상속인이라고 해도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재산을 취득했다면 제3자로 봐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2심 판단도 1심과 같았다. 나아가 2심은 제일은행이 친일재산인 줄 모르고 경매를 통해 땅을 취득했으므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현재 이 회장 소유가 된 땅을 정부가 환수하면 제일은행과 이 회장의 과거 소유권이전등기도 순차적으로 말소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제일은행의 정당한 권리를 해치는 결과로 이어져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재차 판결에 불복했지만, 대법원도 원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