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연대기 ‘녹야’…판빙빙 “이주영에게 손편지 러브콜”

입력 2023-10-06 06:30
영화 '녹야' 스틸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때로는 여성만이 여성을 진정으로 돕고, 이해하고,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 출연하기로 한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여성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또 다른 여성을 돕는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5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 KNN시어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 배우 판빙빙이 영화 ‘녹야’에 출연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초록색 밤을 뜻하는 ‘녹야’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작품 가운데 하나로 한슈아이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한슈아이 감독은 사춘기 소녀의 섬세한 감정을 그린 데뷔작 ‘희미한 여름’으로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돼 피프레시상을 수상했다.

5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영화' 녹야' 기자회견에서 배우 판빙빙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판빙빙은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 진샤 역을 맡아 배우 이주영과 호흡을 맞췄다.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일하는 진샤는 어느 날 마주친 초록머리 여자아이에게 묘한 이끌림을 느낀다. 폭력적인 한국인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3500만원이 필요했던 진샤는 마약 운반책인 초록머리 여자아이와 함께 모험을 결심한다.

경제적 빈곤과 성폭력에 노출된 두 여성의 연대기를 그린 이 영화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됐다. 한슈아이 감독은 “처음 머리에 스치는 화면으로 영화를 구상하곤 한다. 이번에 떠올린 이미지에서는 두 명의 여자가 밤에 달리고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녹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며 “판빙빙과 이주영이 맡은 역할은 두 사람이 이전에 했던 작품들에서 맡은 역할과 완전히 반대인데, 그 점이 재밌는 도전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5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영화 '녹야' 기자회견에서 배우 이주영(왼쪽)이 배우 판빙빙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한슈아이 감독은 “영화 ‘야구소녀’에 나온 이주영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에게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며 “웃는 모습이 귀여운 이 여자아이에게서 새로운 면을 꺼내보자고 생각했고, 외향적이고 강인한 역할을 많이 했던 판빙빙에게는 내면을 파고드는 이번 연기가 큰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판빙빙은 ‘녹야’에서 이주영과 함께 연기하기 위해 직접 편지를 써 보낸 이야기를 전했다. 판빙빙은 “말도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다. 여배우에게 손편지로 감정을 전달한 건 처음이었다”면서 “전작에서 본 이주영의 귀여우면서 진정성 있는 모습이 우리 영화에서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이미지라고 생각해 손편지를 써서라도 이주영을 데려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영화 '녹야' 기자회견에서 한슈아이 감독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판빙빙은 그간의 공백기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는 “연기자는 때로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침착하게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 몇 년 정도 쉬면서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삶의 기복은 누구에게 있는데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스스로를 고르는 시간을 가지며 인생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대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했다.

이주영은 “이번 영화에서 캐릭터를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판빙빙이었다. 배우들은 연기하면서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눈으로, 마음으로 통하는 것들이 느껴질 때 마음이 열리고 가까워진다”며 “쉽지 않은 연기이기도 했다. 초록머리 여자아이는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즉각적으로 알아챌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인물이다. 한슈아이 감독이 ‘풀어놓은 동물처럼 연기하면 좋겠다’고 한 것에서 처음에 힌트를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부산=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