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열 살이 돼서야 도시로 나왔다.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해 영화를 찍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매번 영화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었다. 영화는 내게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큰 세상을 가져다 줬다. 영화가 없었다면 주윤발도 없었다.”
‘영원한 따거’ 주윤발이 5일 부산 해운대구 KNN타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1980~90년대 홍콩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주윤발은 전날 막을 올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했다.
주윤발은 부산을 방문해 상을 받은 소감에 대해 “연기 인생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 기쁘다. 부산은 굉장히 아름다운 도시”라며 “이틀 연속 아침에 달리기를 했는데 사람들이 반겨줘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진 이후 주윤발은 와병설 등 가짜뉴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내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웃은 주윤발은 “그런 소문은 매일 있는 일이라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나이가 들면 취미를 찾고 건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11월에 홍콩에서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에 내일 연습 삼아 부산에서 10㎞를 뛰어보려고 한다. 뛰다가 (힘들어서)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우스개소리를 했다.
그는 부산에서 오랜만에 새 작품 ‘원 모어 찬스’를 선보인다. 빚에 허덕이며 매일 카지노에 출근 도장을 찍는 주인공이 어느날 갑자기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윤발은 “부자지간의 정을 다룬 영화를 좋아한다. 이런 장르를 오랜만에 하게 된 것이 마음에 들고, 한국 팬들이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배우에서 마라톤 선수로 전환하는 시점의 마지막 작품이다. 반응이 안 좋으면 운동선수만 할 수도 있고, 마라톤을 하다가 기록이 잘 안 나오면 다시 연기를 할 수도 있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국내 팬들에게 ‘영웅본색’은 주윤발의 대표작이다. 그는 “‘영웅본색’은 드라마를 떠나 만난 첫 작품이었다”며 “대표적인 작품 세 편을 꼽으라면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홍콩 영화의 황금기가 지난 지금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가 주목받는 데 대해 그는 “어느 한 지역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돼 있을 때 다른 지역이 뒤이어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다는 게 좋다. 한국 영화가 크게 부상한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라며 “한국 영화의 가장 큰 경쟁력은 창작의 자유가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박하게 생활하기로 유명한 주윤발은 과거 8100억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그는 “내가 힘들게 번 돈인데 아내가 기부했다. 난 용돈을 받고 살고 있다”며 익살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어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기에 갈 때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난 아침을 먹지 않아서 하루에 흰 쌀밥 두 그릇이면 되는데 당뇨를 앓고 있어서 한 그릇만 먹어도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자회견 내내 입담과 재치로 분위기를 쥐락펴락했다. 어느덧 일흔을 앞둔 나이지만 짖궂은 표정을 짓는 주윤발의 얼굴에는 여전히 소년이 남아있었다.
주윤발은 “모든 게 환상이고 지금 이 순간만이 진짜라는 말을 좋아한다. 현재를 살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태어나면 죽는 게 인생이다. 나이 들고 주름이 생기는 건 두렵지 않다”며 “앞으로도 배역에 제한을 두지 않고 감독이 기회를 준다면 어떤 역할이든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