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선에 액체 뿌린 아이 엄마의 사과…“다 제탓입니다”

입력 2023-10-05 00:02 수정 2023-10-05 10:08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서울 지하철 의자에 렌즈 세척액을 뿌리고 큰소리로 욕을 하는 등 공공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여중생의 모습이 온라인에 공개돼 큰 비난을 받았다. 이 학생은 사건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사과문을 올리고, 당시 본인의 행동을 지적했던 시민 A씨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반성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생 B양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B양 어머니로부터 수차례 사과 메일을 받은 사실을 전했다. 그는 “B양의 어머니가 올바른 분 같았고, 옳은 길로 아이를 훈육하고자 하는, 진짜 어머니라고 생각했다”며 “사회가 B양과 그의 어머니에게 더는 어떠한 비판이나 처벌의 필요성을 내세우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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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지난달 5일 오후 3시40분쯤 미사에서 방화행 방면으로 달리던 5호선 열차에서 일어났다. B양은 친구들과 지하철 의자에 렌즈 세척액을 뿌리고,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욕설을 했다. A씨가 B양의 행동을 지적하자 B양과 친구들은 오히려 A씨의 사진을 찍고 지하철 의자에 본인들의 화장품을 올려두기도 했다. A씨가 해당 사연을 온라인에 공개하고 공분이 커지자 B양은 A씨에게 사과 메일을 보내고 싶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에 A씨는 B양에게 본인의 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B양은 지난달 26일 A씨에게 메일을 보내 “사진을 찍은 것은 잘못한 행동이므로 사과하고 싶다. 사진은 아예 삭제했다. 그날 욕을 한 것은 제 생일이었는데 엄마에게 계속 전화가 와서 화가 났다. 공공장소에 피해를 준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래를 튼 것도 친구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다가 켜진 것 같다. 앞으로 공공장소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A씨는 같은 날 답장을 보내 “공공장소에서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알고 있음에도 잘못된 행동을 했다.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친구와 약속한 후 공개사과문을 올려 달라”고 했다. 이어 “부모님께서 이 일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부모님이라면 이 일에 맞는 훈계를 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의 답장 이후 B양은 ‘5호선 지하철에 렌즈 세척액 뿌린 학생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사과문을 올렸다. B양은 사과문에서 “저희가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여러 사람이 앉는 의자에 렌즈 세척액을 뿌린 것에 대해 매우 반성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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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양의 사과문이 올라온 뒤 A씨는 B양 어머니로부터도 메일을 받았다. B양 어머니는 “제 아이가 백 번이고 잘못했다”며 “잘못된 부분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교육에 신경 못 쓴 제 탓”이라고 적었다.

이후에도 B양 어머니는 모두 13차례에 걸쳐 B양이 반성하는 모습과 그 후의 행동을 메일로 상세히 적어 A씨에게 보냈다. B양과 어머니는 함께 강동역을 방문해 역 관계자들을 만나고, 지하철 의자가 손상된 부분에 대해 변상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고 한다.

A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B양 어머니와 주고받은 메일 내용을 전했다. 앞으로 아이가 올바르고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바란다는 A씨의 마지막 메일에 B양 어머니는 “아이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게 기회를 주셨다. 잘 훈육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A씨는 “한 아이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올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기까지 왔다. 또 우리 사회에 아직은 훌륭한 부모님이 한 분 정도 더 있다는 희망을 느꼈다”며 “이 사건을 접한 다른 분들도 아이에 대한 책망보다는 아이의 미래를 응원해 주시고, 이 사회의 다음 세대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