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 교수의 ESG와 기독교-23] ESG경영과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

입력 2023-10-04 10:54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 윤리’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유명한 책이 있다.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이 책은 막스 베버가 19세기 후반기에서 20세기 초 독일의 사회철학자로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프라이브르크 대학, 하이델베르크 대학 등에서 경제학 교수로 활발한 연구를 하다 명예교수가 된 직후인 1904년과 1905년에 걸쳐 ‘사회과학과 사회정책학’ 저널에 연재한 논문을 기초로 간행된 것이다.

막스 베버는 이 책에서 소득 수준이 높은 기업가와 고급 노동자들이 높은 비율로 개신교도 임에 주목하고 그 인과관계를 규명했다. 연구 결과 프로테스탄트즘 윤리가 재투자를 위한 부의 축적과 서구 자본주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주장하고, 특히 프랑스의 종교개혁가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이 주장한 직업 소명설이 부의 축적을 정당화하고 근면과 절제를 미덕으로 제시함으로써 중산계급의 경제적 풍요와 자본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소명(召命, vocation)은 ‘신의 부르심’이라는 뜻이다. 칼뱅에 따르면 직업은 ‘하나님이 부여해준 거룩한 의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세속의 직업을 통해 하나님이 내린 소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직업윤리가 바로 직업 소명론이다. 인간의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신의 직업을 거룩하게 여기고 소명 안에서 충실히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맡은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검소하고 금욕적인 태도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는 근면, 절제, 효율성을 강조하는 잠언 말씀과 연결된다. 잠언 6장 6절에 보면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말씀한다. 8절에는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효율성과 계획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잠언 10장 4절에는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그리고 잠언 12장 24절에는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말씀한다. 이 이외에도 성경은 개인의 노력, 절제, 효율성과 같은 덕목을 강조하는데, 이런 덕목들이 바로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 중 일부이다.

이러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21세기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으로 연결된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근검절약하여 경제적 부(wealth)를 축적하는 목적이 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더 잘 따르기 위함이라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는 혁신을 통해 재무적 이익을 추구할 뿐 아니라 동시에 이웃을 이롭게 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자는 ESG경영의 목적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의 핵심 가치인 하나님 사랑은 ESG경영의 지배구조(Governance) 부문과 연결될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그가 베푸시는 축복과 은총을 누림으로 인간은 행복하게 되지만,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모든 영광을 그에게 돌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의 출발이며 근간이 되는 지배구조이다. 이웃 사랑은 인류의 번영과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깨끗한 환경(Environment)과 기업을 둘러싼 지역사회에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고 공정한 경쟁과 윤리적인 경영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과 관련된다. 지속가능성은 ESG경영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가치 중 하나이다.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는 1620년 잉글랜드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아메리카 대륙의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Plymouth)에 도착한 청교도들에 의해 미국으로 전승되었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신은 미국을 자본주의 종주국으로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미국 경영자들의 ESG 경영사례를 통해서도 그 모습이 드러난다.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 Inc.)를 경영하며 당대에 막대한 재산을 모은 워런 버핏(Warren Buffett, 1930~)은 검소한 일상을 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원래 버핏의 조상은 프랑스 모직물 직조공이었으며 17세기 미국 동부 뉴욕주로 이민 온 존 버핏이다. 존 버핏은 칼뱅이 만든 개혁교회인 위그노 교회의 신도였다. 워런 버핏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상 대대로 체화되어 내려오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를 실천하고 있다.

워런 버핏은 평생에 걸쳐 근면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직업에 충실히 임했으며 근검절약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Omaha)시에 있는 버핏의 집은 1958년에 3만1500달러를 주고 구입한 목조로 만든 평범한 이층집이다. 그는 재산이 1100억 달러(143조원)나 되는 세계 5대 부자가 된 지금도 같은 집에 살고 있다. 필자가 오마하에 살 때 근무하던 대학이 버핏의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버핏 회장은 엄청나게 비싼 고급 음식이 아니라 평소에도 종종 근처 맥도날드를 이용하는 등 매우 서민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워런 버핏은 지난 수십 년간 자선단체에 막대한 돈을 기부해오고 있다. 2023년 중에도 46억4,000만 달러(약 6조390억 원)의 가치를 가진 주식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버핏은 2006년 자신의 생전에 전 재산의 99%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이래 해마다 막대한 돈을 사회에 기부하고 있다. 버핏뿐 아니라, 빌 게이츠도 해마다 큰돈을 자선기관 후원과 질병 퇴치,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이 밖에도 구글의 래이 페이지 등, 수많은 재산가와 기업가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기부 서약(Giving Pledge)’ 운동을 펼치며 사회공헌을 생활화하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자신이 평생에 걸쳐 축적한 귀중한 부를 사용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는 일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이를 통한 신의 뜻을 이루려는 노력을 강조한다. 이 윤리 하에 부의 축적은 단순히 세상의 물질적 성취나 풍요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자연과 인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감사함에 뿌리를 두고 있는 ESG경영의 취지와 연결되는 것이다. (다음 회, 파타고니아 ESG 사례를 통해 보는 기독교윤리)

◇ 이호영 교수는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교내 ESG/기업윤리 연구센터 센터장으로 ESG경영, 재무회계와 회계감사, 경영윤리를 강의하고 여러 기업을 대상으로 ESG 관련 자문을 하고 있다.

정리=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