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알코올중독자·노숙인 재활시설인 베텔센터(Betel Mongolia)는 수도 울란바토르 중심가에서 약 16㎞ 떨어진 송지노하르한 지역에 있다. 고층 빌딩이 밀집한 시내를 벗어나 게르(몽골 전통 가옥)촌과 대규모 공동묘지를 거쳐 차로 1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한다. 지난 20일 찾은 센터의 공방엔 여성 다섯 명이 슬리퍼와 인형, 동전 지갑 등 양털 공예품을 만들고 있었다.
“모두 우리 센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분입니다. 일부는 여성 기숙사에, 일부는 가족용 숙소에서 지냅니다. 여기서 지내며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 가정을 꾸린 다섯 가정이 있거든요. 우리 가족도 이들과 함께 지냅니다.”
남편 간바드 앗쉬흐(46) 목사와 베텔센터 사역 전반을 이끄는 고르반촐른 다와(45)씨의 말이다. 부부는 이날 남녀 및 가족 숙소와 예배실, 시설 내 사업장인 비닐하우스와 중고의류 판매점, 카페 등 센터 곳곳을 안내했다. 사업장의 소득 전액은 센터 운영에 쓰인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시설은 공동샤워장이다. 남자 기숙사 1층에 있는 이곳은 입소자뿐 아니라 인근 주민도 같이 사용한다. 저소득층이 사는 게르엔 샤워시설이 없는 경우가 적잖아서다. 곳곳에서 비누 향이 나는 샤워장은 전반적으로 깔끔했다. 앗쉬흐 목사는 “이 어르신은 20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분이다. 여기서 14년째 샤워장을 관리하고 있다”며 “센터에서 예수를 영접한 뒤 성실히 일해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알코올중독자를 위한 또 하나의 가족
몽골의 알코올중독 사망률은 매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제 통계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에 따르면 1990년 연간 몽골 인구 10만명당 알코올중독 사망자는 2.55명이었다. 2019년엔 이 수치가 15.77명으로 올라갔다. 29년 새 알코올중독 사망자가 518%가 증가한 셈인데 세계에서도 유례없이 높은 수치다. 알코올중독이 몽골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한 지도 이미 오래다. 센터를 찾은 이날 오전 10시에도 현지 경찰은 도로에서 음주 단속을 하고 있었다. 매년 급속도로 알코올중독자가 늘면서 베텔센터에도 그간 2000명이 넘는 이들이 찾아왔다. 마약·도박중독자도 있지만 대부분 알코올중독자나 노숙자다. 입소 비용은 따로 없지만 조건은 있다. 술·담배·마약은 소지할 수 없으며 센터의 치유 프로그램 및 직업훈련, 성경공부와 예배는 필수로 참여해야 한다.
부부는 센터를 찾은 이들에게 가급적 1년 6개월은 머물 것을 권한다. 이 정도는 있어야 각종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앗쉬흐 목사는 “각종 중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따로 약물을 쓰진 않는다. 100% 예수로만 치료한다”고 했다. 예수를 만나면 어떤 종류의 중독자라도 과거의 상처와 실패에서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고 확신해서다.
각종 중독 탈출…당신도 할 수 있다
그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건 본인도 알코올중독자로 살아온 경험이 있어서다. 앗쉬흐 목사는 2000년 기독교로 회심한 이후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났다. 술을 끊고 나니 그간 함께 술을 마셔온 여러 친구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는 “알코올중독자의 삶이 얼마나 고된지 내가 잘 안다. 친구를 중독에서 구하려면 이들에게도 예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알코올중독자를 위한 사역을 위해 부부는 2006년부터 2년간 인도의 베텔센터로 연수를 떠났다. 베텔센터는 WEC국제선교회 소속 선교사가 30여년 전 스페인에서 시작한 비정부단체(NGO)로 24개국 100여개 도시에서 중독 재활센터를 운영한다. 2008년 연수를 마친 부부는 지금의 자리에 센터를 세웠다. 이들은 현재 센터 이외 지역에도 중독 재활공동체를 꾸려 지역 주민과 경찰, NGO 등과 협력해 입소자의 사회 복귀를 지원한다.
입소자의 돌발 행동으로 힘든 점은 없었는지 묻자 앗쉬흐 목사는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마음과 상황을 공감해주면서 입소 전 서약한 규칙대로 대하면 어렵지 않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입소자가 거칠게 나온다고 해서 똑같이 이들을 대한다면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키는 입소자를 보며 ‘내 예전 모습과 비슷하구나. 그럼 이분도 예수를 믿으면 바뀔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면 힘들기보단 기대감이 더 생긴다”고 말했다.
앗쉬흐 목사는 일부 남성 입소자와 함께 공사장에서 노동하며 이들의 사회 복귀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입소자 내 고령자가 늘면서 다른 일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생겼다. 그는 “공사 일은 진입장벽이 낮지만 나이가 들면 하기 힘들다. 그런 데다 겨울이 되면 이마저도 구할 수 없다”며 “나이 든 입소자도 어렵지 않게 일을 익히면서 노동의 가치도 배우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울란바토르=글·사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