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직원에 “조용히 사라져” 반복 문자… 대법 무죄 왜?

입력 2023-09-29 10:09
대법원 전경. 국민일보DB

근태가 불량한 직원을 해고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과격한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회사 대표의 행동은 무죄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지난 14일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1년 2월 직원 B씨에게 공포감과 불안감을 유발하는 내용으로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7차례 메시지를 보낸 혐의를 받는다. 같은 날 오전 7~9시 2차례 전화하거나 해당 직원을 밀친 혐의 등도 있다.

A씨는 B씨의 근무태도가 불성실하고 다른 직원들을 예의 없이 대한다는 이유로 회사 숙소에서 해고 의사를 전달했다. B씨가 반발하며 이유를 묻자 A씨는 전화를 걸어 “왜 자꾸 나를 이기려고 하냐” “너 한번 개망신 당해봐라” 등의 말을 했다. 이후 “조용히 사라져라” “회사 근처에서 얼쩡거리지 마라” 등 과격한 표현이 담긴 메시지를 총 9회에 걸쳐 보내기도 했다.

두 사람의 갈등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A씨는 B씨를 밀쳤다가 폭행 혐의까지 추가됐다.

1·2심은 A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에게 9회에 걸쳐 욕설을 하거나 피해자를 위협하는 내용으로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폭행 혐의는 유죄로 인정하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볼 수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전화통화와 메시지 내용 모두 해고 통지 과정에서의 갈등 표출일 뿐 B씨에게 공포심을 줄 만한 성격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문자 사이에 시간 간격이 있더라도 이어지는 내용이면 하나의 문자로 봐야 하므로 A씨가 보낸 문자의 개수는 공소사실에 기재된 7통이 아닌 3통으로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이에 따라 A씨 행위는 정보통신망법에 규정된 ‘반복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전체적인 내용은 해고의 의사표시를 명확히 고지한 것에 불과하다”며 “고용 관계 종료를 둘러싼 법적 분쟁 또는 협의 과정의 급박하고 격앙된 전개라고 볼 수 있을 뿐 피해자의 불안감 등을 조성하기 위한 일련의 반복적인 행위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