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M양은 “공부를 왜 해야 해요” “힘든 건 하기 싫어요” “어차피 잘 안 될 텐데 뭐하러 노력하죠”라며 아무것도 하질 않는다. 맞벌이로 바빴던 부모는 ‘스스로 깨달으면 열심히 하지 않겠나’ 생각하며 딸을 자유롭게 키웠다. 잔소리나 야단도 별로 치지 않았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동기(motivation)에는 5단계가 있다. 먼저 행동하려는 의지가 없는 상태, 즉 무동기 상태다. 공부를 예로 들면 ‘공부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상태다. 2단계는 외적 조절 동기 상태다. 자율성이 부족한 상태로 보상을 얻기 위해, 또는 처벌이나 위협을 회피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한다. 예컨대 ‘단지 부모님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는 수준이다. 3단계는 내사된 조절 동기 상태다. 외적인 요구를 채택하지만, 진정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닌 동기로 의무감 죄책감 구속감 등으로 행동하는 단계다. ‘학생이니까 공부해야 한다’는 수준이다.
다음 4단계는 확인된 조절 동기, 즉 어떤 행동에 대한 외적 요구의 장점과 중요성을 수용하면서 행동의 동기를 내재화하기 시작하는 단계다. 그 행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내재적 흥미를 위한 것은 아니다. ‘공부는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공부한다’는 수준이다.
5단계 통합된 조절 동기는 자신의 가치나 정체성의 다른 측면과 그 행동이 조화를 이루는 조절을 함으로써 그 행동의 이유를 완전히 수용하는 상태다 ‘내 꿈을 이루는데 공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공부한다’라며 자신의 가치를 다루려는 열망에 의해 행동하는 단계다. 완전히 자율성에 기반한 동기다.
자율성이 중요한 요소지만 자율적 동기만이 사람의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율적 동기가 생겨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많지 않다. 이런 내재적 동기를 갖기 위해선 자율성 유능감뿐 아니라 ‘관계성’이 중요하다.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지시하면 지시를 따르고 주어진 규칙을 지켜 사회적 강화(부모·선생님의 칭찬, 인정, 보상)를 제공받음으로써 부모나 학교, 사회에 소속되고 ‘관계 열망’이 충족돼 동기로 작용하게 된다. 아이가 이후 그 행동을 하며 자율성을 가지려는 열망과 스스로 만족감이나 흥미, 기분 좋은 느낌, 성취감을 내적으로 맛보면서 내재적 동기로 발전한다. 또 유능해지고 싶은 열망으로 인해 더 다양한 행동으로 발전해 간다.
그런데 M처럼 어린 시절 적절한 규칙을 학습하지 못한 경우엔 성장해서도 자발적으로 성취동기가 생겨나기 힘들다. 반면 아동기의 보상과 인정은 아이가 그것을 어떤 의미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보상의 효과가 달라진다. 같은 상황도 잘 조정하기만 한다면 자기가 잘해서 해낸 일에 대한 인정으로 여길 수 있다. 보상을 주는 사람의 의도와 보상을 주는 방식이 중요하다. 압박이 아닌 방법으로 보상한다면 아이는 이를 통제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로부터 “너의 물건을 잘 정리하지 않으며 용돈 없다” “완전히 정리해야 용돈을 받을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들은 이후 아이가 자신의 침실을 청소하게 하는 것보다 “물건을 잘 정리하면 용돈을 받을 수 있어” “방을 청소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라는 말을 들은 후 깨끗해진 방을 즐길 수 있다면 내재적 동기로 발전해 지시가 없어도 방 정리를 스스로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