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격 국가대표 정유진(40‧청주시청)은 지난 25일 중국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 사격 10m 러닝타깃 정상에서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총 6차례의 시리즈 중 절반인 3시리즈를 마쳤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18명의 선수 가운데 11위에 그치고 있었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해 개인 3위의 성적으로 경기를 마쳤다.
마지막 한 발을 쏠 때까지 아무도 메달 색깔을 몰랐었다. 개인 8위 곽용빈(29·충남체육회), 11위 하광철(33·부산시청)과 합산한 한국 대표팀의 최종 성적은 총 1668점으로 출전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북한도 1668점이었지만, 10점 표적 정중앙을 맞힌 ‘이너텐’은 한국이 39회로 북한(29회)보다 많았다. 한국의 최종 점수는 동메달인 인도네시아(1667점)보다는 단 1점 높은 것이었다.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유진은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높이 들고 한동안 바라보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부터 5대회 연속 메달을 수확하고 있다. 오래도록 성공한 국가대표의 길을 걷는 것 같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아픔이 있다. 2010년 전국체전 사격 정식종목에서 러닝타깃이 제외되면서, 그는 소속팀과 계약을 하지 못했었다.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는 러닝타깃은 사격 세부종목 가운데서도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편이었다. 러닝타깃은 여전히 올림픽에서도 겨뤄지지 않고, 아시안게임이 가장 큰 무대다.
그는 생계를 위해 2011년부터 총기 부품을 다루는 한 회사에 취직했고 야간에만 스포츠 선수의 삶을 살았다. 틈나는 대로 태릉선수촌 사격장을 찾아 연습을 했다. 환경이 여의치 않을 때면 방바닥에 누워 표적 없는 천장을 향해 총을 겨눴다. 이미지트레이닝만 수없이 거듭했던 시간이었다.
이후 러닝타깃은 다시 전국체전 정식종목으로 돌아왔고, 정유진은 2017년 현 소속팀인 청주시청과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정유진은 아시안게임에 나서면서 “꾸준한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 덕분에 운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했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은 지난 25일 경기장에서도 대역전극의 동력이 됐다.
정유진은 “연습하지 않으면 승리할 자격이 없다”는 허대경 코치의 말을 늘 되새긴다고 했다. 정작 시합에 들어가서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격선수 대부분이 지키는 ‘루틴’에 대해서도 그는 “만들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조준점 보기, 과감한 격발, 거총 등 연습 때 가장 잘 나타난 본인의 동작 중 딱 한 가지만 생각하는 것이 그의 시합 자세다.
정유진이 ‘닮고 싶은 선수’로 꼽았던 이는 20여년간 한국 사격을 이끌어온 ‘레전드’ 진종오다. 진종오는 정유진이 사대에 오르기 전부터 그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예상했었다. 진종오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유진은 누구보다 성실한 선수이며,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해온 데서 엿볼 수 있듯 체력관리와 노하우가 뛰어나다”고 했다.
정유진은 26일에도 혼합 러닝타깃 종목에서 동료들과 메달에 도전한다. 이번에 겨룰 혼합 러닝타깃은 정상 러닝타깃과 달리 표적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무작위다. 진종오는 “컨디션만 좋으면 된다”고 했다. 정유진은 “사람들이 사격을 생각했을 때, 내 이름을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항저우=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