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등 혐의를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했다.
국가 의전 서열 8위인 제1야당 대표가 영장심사를 받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3분쯤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다.
그는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으로 우산을 쓴 채 법원 청사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이 대표는 “증거인멸 교사는 어떻게 방어할 계획인가” “(로비스트) 김인섭씨와 언제 마지막으로 연락했나” “민주당 인사가 이화영 전 부지사에게 진술 번복을 요청한 것을 알고 있었나” 등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법정으로 가던 도중 중심을 잃고 휘청거려 주변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이 대표 지지자들은 법정으로 들어가는 이 대표에게 “힘내세요”라고 외쳤다.
영장심사는 이날 오전 10시7분쯤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유창훈(50·사법연수원 29기)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시작됐다.
애초 오전 10시부터 영장심사가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빗길 교통체증으로 이 대표의 도착이 늦어졌다.
검찰 측에서는 수사에 참여했던 김영남(사법연수원 34기)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장, 최재순(37기) 공주지청장을 포함해 10명가량이 참석했다.
이 대표 측에서는 고검장 출신의 박균택(21기) 변호사, 부장판사 출신의 김종근(18기)·이승엽(27기) 변호사, 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인 조상호(38기) 변호사 등 6명이 나왔다.
이 대표가 24일간 단식으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긴급 상황을 대비해 법정에는 의료인력 1명이 배치됐다. 휠체어도 준비됐다.
법원은 이날 밤늦게 또는 자정을 넘긴 27일 새벽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 측과 검찰은 범죄 혐의 소명 정도와 구속 필요성을 놓고 팽팽한 법정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법원은 이 대표 측과 검찰의 의견을 듣고 관련 기록을 검토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 대표는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자신의 정치적 운명이 걸린 심문 결과를 기다릴 예정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정치권은 격랑으로 빠져들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검사 강백신)는 지난 18일 이 대표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위증교사,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대표는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4월∼2017년 2월 분당구 백현동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에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 민간업자에게 각종 특혜를 몰아줘 1356억원의 이익을 독차지하게 하고,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최소 20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를 받는다.
이 대표가 오랜 기간 유착해온 선거 브로커이자 비선 실세인 김인섭(구속 기소)씨를 위해 인허가권을 사용해 이익을 몰아주고, 그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성남시가 제거해 준 권력형 지역토착비리 사건이라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이 대표는 경기지사였던 2019∼2020년 김성태(구속 기소) 전 쌍방울그룹 회장에게 자신의 방북비용 등 총 800만 달러(제3자 뇌물 약 106억원)를 북한에 대납하도록 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그룹 사업 확장을 노리던 김 전 회장을 해결사로 활용한 정경유착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검찰은 주장한다.
이밖에 2018년 12월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수행비서였던 김진성씨에게 자신의 ‘검사 사칭 사건’ 관련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재판에서 위증해 달라고 요구한 혐의도 이 대표에게 적용됐다.
이 대표는 이 같은 혐의사실이 직접적인 증거 없이 검찰의 회유·압박에 의한 관련자 진술만을 바탕으로 구성된 허구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이날 오전 8시30분쯤 단식 회복 치료를 받던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을 나섰다.
이 대표는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한 손에 지팡이를 쥔 채 걸어 나왔다. 잠깐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지자들이 응원 구호를 외치자 이 대표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