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로서 갖는 로망일 수 있겠지만 오정세를 떠올렸을 때 사람마다 꼽는 대표작이 달랐으면 좋겠다. 한 가지 색으로 규정되지 않고 관객들에게 늘 신선한 공기, 새로운 인물로 다가가고 싶다.”
영화 ‘거미집’ 개봉을 앞두고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오정세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 속에서 영화를 찍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이번 작품에서 그가 연기한 강호세는 1970년대 톱스타이자 옴므파탈이다.
오정세는 “시나리오를 보고 배역보다는 놀이터에 꽂혀 빈자리 없느냐고 물었다. 영화의 대본과 감독, 함께 출연할 배우들이 좋아 ‘한 공간에서 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며 “결과물을 봤을 때도 ‘한 판 잘 놀았다’ ‘잘 만들어진 작품에 참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거미집’은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 속에서 김열(송강호) 감독이 촬영하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 각자의 욕망을 다룬 영화에서 김지운 감독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거미집으로 형상화했다.
오정세는 “호세는 김열 감독이 걸작을 만들어가는 여정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인물 중 한 명인데 아내를 두고 여직원에게 마음을 주기에 단순히 비호감을 주는 인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감독님과 의논한 끝에 지금과 같이 ‘영화적으로 혼나는’ 설정을 더하면서 관객들이 열린 마음으로 캐릭터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기 장인’으로 불린다. 1997년 영화 ‘아버지’에 처음 출연한 이후 수많은 단역과 조연 경험을 쌓았다. ‘부당거래’(2010), ‘남자사용설명서’(2013), ‘타짜: 신의 손’(2014), ‘극한직업’(2019)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며 ‘믿고 보는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동백꽃 필 무렵’ ‘스토브리그’ ‘사이코지만 괜찮아’ ‘엉클’ ‘악귀’ 등 많은 드라마에서 그는 주연으로, 때로는 주연같은 조연으로 극의 재미와 감동을 끌어올렸다.
오정세는 참여하는 작품마다 캐릭터 연구를 치열하게 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그는 “매번 정답을 찾는 과정이 다르고 힘들다. 캐릭터를 일찍 만나기도, 늦게 만나기도 하는데 방법을 잘 찾지 못하니 이것저것 시도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라며 겸손한 말을 했다.
30년 가까이 연기해 왔지만 오정세는 슬럼프를 겪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작품 속 인물을 빨리 만나고 싶은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으로 되지 않아서 헤맨 적은 있지만 일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낀 적은 없다”며 “연기생활 초반 2~3년 간 작품이 없었을 때도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배우라는 것이 즐거웠다”고 돌이켰다.
배역의 비중을 가리지 않고 연기에 매진해 온 그에게 올해 ‘거미집’으로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건 선물같은 일이었다. 오정세는 “칸에서는 축제 분위기를 마음껏 느끼면서 정신없이 즐겼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함께 한 감독이나 작가와 다시 작업하는 일이 많다. 대중은 오정세의 연기를 한 번 보면 믿고 다시 찾는다.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매력은 뭘까.
오정세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남자사용설명서’ 제작 당시 투자자와 제작사를 설득하러 간 이원석 감독이 ‘주인공 맡은 오정세의 매력이 뭐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하더라. 나도 여전히 모르겠다”며 웃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