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시크교 암살 사건’ 인도 개입 정보 제공

입력 2023-09-24 08:32 수정 2023-09-24 09:40

캐나다에서 발생한 시크교도 지도자 암살 사건 배후에 인도 정부가 연루됐다는 정황 증거를 미국이 캐나다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으로 캐나다와 인도 간 외교 마찰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미국 정보기관까지 개입된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대중국 포위 전략을 위해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미국 정부가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미국 정보기관은 밴쿠버 지역에서 시크교 분리주의 지도자가 살해된 직후 캐나다 정부에 인도가 연루됐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정황(context)을 제공했다”고 복수의 서방 동맹국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다만 이들은 캐나다 주재 인도 외교관들이 암살 사건에 연루됐음을 나타내는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인 통신 감청 정보는 캐나다 측이 확보했다고 전했다. 또 미국은 작전 요원들이 시크교 지도자를 암살하기 전까지 해당 음모나 인도의 개입을 가리키는 증거는 알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캐나다 국적의 분리주의 단체 지도자 하디프 싱 니자르는 지난 6월 18일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한 시크교 사원 주차장에서 복면을 쓴 2명의 괴한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지난 19일 암살 사건 배후로 인도 정부를 지목하며 인도 외교관을 추방했고, 인도는 “상식에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인도 주재 캐나다 고위 외교관 1명을 맞추방했다. 인도는 캐나다에 대한 여행주의보를 발령하고, 캐나다에서 인도 입국비자 업무까지 중단하며 양측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 주도의 정보 공유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멤버다. NYT는 “미국은 캐나다를 포함한 가장 가까운 정보 파트너들과 일상적으로 방대한 양의 감청 통신 자료를 자동으로 공유한다”며 “그러나 암살 사건과 관련한 상황별 정보는 다양한 ‘정보 스트림’ 패키지의 일부로 의도적으로 공유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암살 사건 발생 직후 “우리는 관련 사전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알았다면 ‘경고 의무’ 원칙에 따라 즉시 알렸을 것”이라는 입장을 캐나다 측에 전달했다고 두 명의 동맹국 관리가 전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전날 유엔총회에 참석 중 기자들에게 “초국가적 탄압으로 보이는 어떤 사례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며 “우리의 인도 친구들이 그 조사에 협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캐나다 측 요청을 받고 최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 암살 사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그러나 이번 사건이 대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 전선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NYT는 “미국 관리들은 대체로 인도로부터 외교적 반발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며 “미국 정보기관의 개입은 캐나다와 인도 간 외교적 싸움에 미국까지 휘말리게 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관리들은 가까운 동맹국인 캐나다를 돕고 싶지만,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증가에 대한 견제를 위해 관계를 확대하고자 하는 인도를 소외시키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NYT는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정부의 정보기관은 원하는 곳이면 어디서든 암살을 조율하는 게 흔한 일이지만, 민주주의 국가가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 치명적인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인도 정부의 연루 의혹은 워싱턴 관리들에게 충격”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