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지한파 정치인인 미국 민주당 중진 밥 메넨데스 연방 상원 외교위원장 부부가 뇌물 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그의 자택에선 뇌물로 받은 현금과 금괴가 가득했다. 한국계 앤디 킴 하원의원은 “그를 물러나게 할 책임을 느낀다”며 해당 지역 상원의원 출마를 선언했다.
뉴욕 맨해튼연방지검은 22일(현지시간) 매넨데스 의원과 부인 내이딘 메넨데스를 뇌물 혐의로 기소하고 현금과 금괴 등을 증거로 압수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메넨데스가 자신의 직권을 남용해 이집트에 대한 무기 판매에 영향을 미치고, 사업가 등에 대한 범죄 수사를 방해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뇌물 제공 혐의로 뉴저지의 유명 부동산 사업가인 와엘 하나와 호세 우리베, 프레드 다이베스 등 3명도 함께 기소했다.
검찰은 지난해 메넨데스 의원의 자택 옷장 등에서 하나 등에게서 받은 현금 55만 달러와 10만 달러 상당의 금괴를 발견했다. 검찰은 메넨데스 의원 부부가 현금과 금괴 외에도 메르세데스 벤츠 컨버터블 승용차를 뇌물로 받았고, 주택 대출금도 사업가들에게 대납시켰다고 밝혔다. 뇌물 목록에는 메넨데스 자택으로 전달된 운동기구 2대와 공기청정기 1대도 포함됐다.
메넨데스 의원은 2018년 현재 부인인 내이딘과 교제를 시작했고, 그녀 소개로 뉴저지의 이집트계 사업가인 하나 등을 알게 됐다. 하나는 내이딘에게 메넨데스 의원이 이집트에 더 많은 군사 장비를 파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면 자신이 운영하는 할랄(HALAL) 육류 회사 사업에 동참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후 메넨데스 부부와 하나 등의 공생 관계가 시작됐다. 메넨데스는 이집트 카이로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 인적사항 등 민감 정보를 부인과 공유했고, 그녀는 이를 하나에게 전달했다. 하나는 이를 다시 이집트 정부 관리에게 건넸다. 메넨데스는 또 미국 상원에 이집트에 대한 추가 군사 지원을 촉구는 이집트 관리의 편지를 대필하는 데도 동의했다고 한다.
메넨데스는 2018년 7월 이집트 관리들과 면담한 뒤 부인에게 자신이 수백만 달러 규모의 대이집트 무기 판매에 서명할 것이라고 하나에게 알리라는 문자를 보냈다. 하나는 해당 메시지를 2명의 이집트 관리에게 보냈는데, 그중 한 명은 엄지손가락 이모티콘을 답장으로 보냈다.
미 국무부는 이집트 인권 문제를 이유로 군사 지원을 보류해 왔기 때문에 이집트 정부는 이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메넨데스 의원은 당시 상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였다.
메넨데스 부부는 뇌물 수수를 숨기기 위해 암호화된 전화나 페이퍼 컴퍼니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검찰에 따르면 내이딘은 이집트에 대한 25억 달러 상당의 군수품 판매 관련 뉴스 기사를 하나에게 보내 “남편이 서명해야 했다”고 언급하는 등 메넨데스 의원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했다. NYT는 “하나 등은 현금만 전달할 수 있다면 메넨데스로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빼낼 방법이 많다는 걸 발견한 듯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하나와 그의 동료 우리베는 메넨데스 의원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6만 달러가 넘는 메르세데스-벤츠 컨버터블 승용차 C-300 컨버터블을 사주겠다고 제안하며, 우리베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무마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베 등에 대한 공소장에는 메넨데스 의원이 검사실에 연락해 사건을 유리하게 해결하라고 압력을 가한 정황이 담겨 있다고 NYT는 전했다.
메넨데스 의원이 검사에게 전화한 며칠 뒤 내이딘은 하나에게 “모든 게 잘 됐다. 다음 주에 차를 받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문자를 보냈다. 내이딘은 한 식당 주차장에서 우리베를 만나 승용차 계약금 1만5000달러를 받은 뒤 “당신은 꿈을 실현시키는 기적의 일꾼”이라는 문자도 보냈다.
메넨데스 의원은 하나의 또 다른 동업자이자 자신의 후원자인 다이베스에 대한 기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뉴저지 연방검찰청장 인사에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2021년 인사권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필립 셀린저 변호사를 추천했고, 실제로 셀린저 변호사가 뉴저지 연방검찰청장으로 임명됐다. 다만 셀린저 검찰청장은 메넨데스 의원의 희망대로 뉴저지 사업가에 대한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폭스뉴스는 “메넨데스 공소장에는 거의 교과서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폭탄급 혐의가 담겨 있다”며 “이번 기소는 구시대적 정치인의 부패 상황을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기소 사실이 공개된 뒤 메넨데스 의원은 성명을 통해 “지역구 사무소의 정당한 일상 업무에 대해 검찰이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필 머피 뉴저지주 주지사, 빌 패스크럴, 앤디 킴, 미키 셰릴 등 뉴저지주 하원의원 등은 그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그는 외교위원장직만 잠시 물러나겠다고 맞섰다.
한인 2세인 김 의원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민주당이 뉴저지 상원의원 선거에서 패하거나, 국가의 청렴성을 훼손하는 상황이 와선 안 된다”며 메넨데스 의원을 축출하기 위해 상원 당내 경선을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메넨데스 의원은 2015년에도 100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배심원단의 불일치 평결로 2018년 1월 위기에서 벗어났다. 메넨데스 의원은 1982년 뉴저지 유니언시티 교육위원회 근무 당시 시장이 마피아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을 폭로한 뒤 지방의원으로 당선됐고, 이후 시장과 연방 하원을 거쳐 상원에 입성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