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비리로 입사한 사실이 드러나 해고된 은행 직원이 “입사 청탁에 직접 관여한 바 없다”며 해고 무효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재판장 김도균)는 A씨가 우리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 확인 소송에 대해 최근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는 2015~2017년 벌어진 우리은행 채용 비리의 수혜자였다. 2017년 상반기 공채에 지원해 서류전형과 1·2차 면접을 거쳐 입사했다. 당시 우리은행은 고위 공직자나 주요 고객, 행원의 자녀·친인척 등을 특혜 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 수사를 통해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됐고, 징역 8개월의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이 전 은행장에 대한 수사·재판 과정에서 A씨 역시 1차 면접 점수가 합격선 아래였지만 채용 담당자들이 결과를 조작해 합격한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은행 지점장이던 A씨 아버지가 국가정보원 정보관에게 자녀의 공채 지원 사실을 알렸고, 이 정보관이 은행 부문장에게 “알아봐 달라‘라며 채용을 청탁했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이 전 은행장의 유죄 판결이 확정되자 부정 채용된 직원들에게 사직을 권고하거나 해고를 통보했다. 이에 A씨는 “아버지가 공채 지원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고, 은행이 특혜 채용하는 데 가담하지도 않았다”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그러나 A씨에 대한 해고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A씨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인정된다”며 “불합격권이었음에도 채용되는 부당한 이익을 얻었고, 은행은 채용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심각하게 훼손돼 사회적 신뢰가 손상되고 명예가 실추됐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A씨는 부정행위를 통해 직업적 안정과 보수라는 이익을 상당 기간 향유한 반면, 이로 인해 선의의 다른 지원자는 불합격해 커다란 경제적·정신적 손해를 봤다”며 “이를 시정하지 않는 것은 사회정의 관념에도 반한다”고 판단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