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세계 평화의 최종적 수호자여야 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다른 주권국가를 무력 침공해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무기와 군수품을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정권으로부터 지원받는 현실은 자기모순적”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 본회의장에서 열린 유엔총회 일반토의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고, 유엔으로부터 각종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으로부터 무기와 군수품까지 지원받는 상황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에서 안보리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이런 행동이 유엔 안보리 개혁 목소리가 나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이는 동시에 미국과 일본의 안보리 개혁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것이기도 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전날 연설에서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확대 등 유엔 안보리 개혁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WMD(대량살상무기)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러·북 군사 거래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동맹·우방국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 대통령은 또 “나라마다 군사력의 크기는 다르지만, 우리가 모두 굳게 연대해 힘을 모을 때, 그리고 원칙에 입각해 일관되게 행동할 때, 어떤 불법적인 도발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평화에 대한 직접적이고 실존적인 위협일 뿐 아니라, 인태(인도·태평양) 지역과 전 세계 평화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10일 아세안 회의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부터 군사적으로 밀착하는 북한과 러시아를 향해 경고 메시지를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이번 연설에서 북한과 러시아를 함께 지칭할 때 기존의 ‘북·러’라는 대신 ‘러·북’으로 순서를 바꿔 표현했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교류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가속화로 이어질 경우 한국 안보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15분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전례없는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 안보는 물론, 경제·기술·보건·환경·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국가 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며 “이런 격차를 줄이고, 세계 모든 국가가 상생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강력히 연대해야 하며, 유엔이 그 중심에 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개발·기후·디지털 세 분야에서 나타나는 글로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한국의 기여방안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공적개발원조(ODA)를 위한 내년도 예산을 올해 대비 40% 이상 확대한 점과 기후 취약국을 지원하기 위한 녹색기후기금(GCF) 추가공여, 글로벌 디지털 규범 형성을 위한 ‘디지털 권리장전’ 마련 계획 등을 구체적인 이행방안으로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CF연합(Carbon Free Alliance)을 결성할 것을 유엔 회원국들에 제안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북한과의 무기거래 가능성을 부인하는 러시아의 주장을 적극 반박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9일 뉴욕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번 북·러 정상의 만남 몇달 전부터도 군사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며 “(북한과 러시아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은 지난 일주일 상간이 아니라 이미 계절이 바뀌기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뉴욕=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