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제2의 도시 버밍엄이 파산을 선언했다. 이번 파산으로 도미노 붕괴 위기를 직면한 영국 지방정부들의 열악한 재정 상황이 수면위로 드러나게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일(현지시간) “리시 수낵 영국정부가 파산을 선언한 버밍엄에 관리인을 선임하고 비상조치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마이클 고브 균형발전·주택장관은 의회에서 “버밍엄 재정과 관련된 모든 기능은 오늘부터 중앙정부가 책임질 것”이라며 “버밍엄 재정을 지속 가능한 상태로 복귀시킬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더타임스는 “외부 전문가가 투입돼 수익 증대, 비용 절감 또는 자산 매각 등의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버밍엄 시의회는 재정 해결방안으로 자산 매각과 감원, 정부 지원 요청, 주민세 인상 등을 제시했다. 앞서 시의회는 올해 예산 32억 파운드 중 8700만 파운드가 빈다면서 파산을 선언하고 지방정부재정법에 따라 필수 서비스 외 모든 지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남녀 동일임금 관련 재판에서 패배하면서 최대 7억6000만 파운드를 소급 지급하게 된 것이 버밍엄 파산의 직접적 원인이지만, 재판에서 이겼더라도 시기만 늦어졌을 뿐 파산은 막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영국 싱크탱크 ‘지방정부 정보유닛’의 조너선 카-웨스트 연구원은 “중앙정부가 지원금을 삭감하는 상황에서 고령화 인구와 아동의 복지비용이 증가했다”며 “인플레이션까지 덮치면서 버밍엄처럼 파산 선언을 코앞에 둔 지방정부가 여럿”이라고 말했다.
앞서 2020년에도 크로이던, 워킹 등 7개 영국 지방정부가 파산을 선언했다. 영국 47개 도시 의회로 구성된 지방자치협의체는 앞으로 26개에 달하는 시의회가 2년 내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버밍엄 파산사태는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과도한 감세와 경제 실책이 지방정부에 누적 부채와 부실을 터뜨리며 발생했다. 트러스 내각은 인플레이션이 최악으로 치닫던 지난해 9월 소비 진작과 투자 진작을 명분으로 450억 파운드(약 74조원) 규모의 대규모 감세정책을 꺼냈다.
지방정부 파산과 함께 교통, 연금, 보건의료 등 공공서비스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파산했던 남동부 에식스주 서럭의 한 의원은 “도로 관리가 되지 않아 길은 더러워졌고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던 버스는 운행을 중단했다”며 “지난해 10% 올린 지방세를 다시 증세할 계획”이라고 BBC에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