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요르단 계곡에 위치한 이 유산은 선사시대 인간 활동의 퇴적물을 포함하고 있으며 인근에 ‘아인 에스술탄(Ain es-Sultan)’이라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 타원형의 텔 또는 마운드(mound·더미)”라며 “오아시스의 비옥한 토양과 용이한 물의 접근으로 기원전 8000~9000년 이곳에 영구 정착지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현장에서 발견된 해골과 조각상은 그곳에 살고 있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제사 행위를 증언하고, 초기 청동기 시대 고고학 자료는 도시 계획의 흔적을 보여준다”며 “중기 청동기 시대의 흔적은 사회적으로 복잡한 인구가 거주했던 대규모 가나안 도시 국가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종려나무의 성읍
‘텔예리코’를 포함한 여리고는 ‘달(月)의 성읍’ ‘종려나무의 성읍’ ‘향기의 성(城)’이란 뜻을 갖고 있다. 요르단 강 서쪽으로 약 8㎞, 사해(Dead Sea) 북쪽으로 약 11㎞, 예루살렘 북동쪽으로 약 23㎞ 지점에 위치한(수 2:1) 당대 최고(最古) 성읍(민 22:1; 26:3)이었다. 여리고는 또 요르단 강 동쪽에서 지중해 연안의 블레셋 땅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자, 요르단 강 서쪽의 넓고 비옥한 평원을 지키기 위한 경제·전략적 가치 때문에 고고학에 따르면 BC 7000년경에 이미 이곳에 성읍이 세워졌다고 한다.
이곳은 열대성 기후 지역 내에 있는 일종의 오아시스에 해당한다. 여리고는 지중해 수면보다 약 250m 낮았던 반면 예루살렘은 해발 790m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급한 내리막길이었고 지형이 험하여 강도들의 출몰이 잦았다고 한다. 실제로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에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고 전한다.(눅 10:30)
성경 속 여리고
종려나무가 많아 ‘종려의 성읍’이라 일컬어지는(신 34:3; 삿 1:16; 대하 28:15) 여리고는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전쟁의 첫 대상지였다. 이스라엘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이곳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탈취했다.(수 2:1~3; 6:1~25; 히 11:31).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성을 전투로 함락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돌았고 마지막 7일에는 일곱 번을 돌며 나팔을 불며 소리를 질러’(수 6:15~21, 히 11:30) 무너뜨렸다.
당시 지휘관이었던 여호수아는 무너진 여리고를 재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선언했으나(수 6:26), 후에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이를 어기고 성을 건축하다가 첫째와 막내 아들을 잃었다.(왕상 16:34) 이후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여리고는(수 18:12, 21), 겐 사람의 거주지가 되기도 했고(삿 1:16), 모압 왕 에글론이 점령하기도 했다.(삼하 10:4~5)
여리고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거주하던 곳이기도 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방문한 적이 있으며(왕하 2:4~22), 이스라엘 자손이 선지자 오뎃의 권면으로 이곳에서 유다 포로를 석방하기도 했다.(대하 28:8~11, 15)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침공했을 때 예루살렘 성을 탈출해 나온 유다 왕 시드기야가 이곳에서 사로잡혔다.(왕하 25:5; 렘 39:5). 또 바벨론 포로 귀환 때는 이곳 출신자들이 돌아와 성벽을 재건하기도 했다.(스 2:34; 느 3:2)
신약 시대에는 예수께서 여리고 성을 지나시다가 시각 장애인 바디매오의 눈을 치료해주셨고(마 20:29~34), 세리장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을 때 그를 부르시며 만나기도 하셨고(눅 19:1~2),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배경으로 이곳을 언급하기도 하셨다.(눅 10:30, 33) 기독교 전승에는 예수께서 40일간 금식한 후 여리고의 ‘높은 산’(마 4:8~9, 막 1:13)에서 시험을 받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편 텔예리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등재 결정이 되자 이스라엘은 강하게 반발했다. 세계유산위원회가 엑스(옛 트위터) 공식 계정에 ‘팔레스타인의 옛 예리코·텔 에스-술탄’이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텔예리코는 현재 팔레스타인이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이 자치 지역이 자신의 영토라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팔레스타인이 유네스코를 부정적으로 이용하고 정치화하는 또 다른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옛예리코의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중요성을 인정하는 의미 있는 결정”이라며 환영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