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극복의 디딤돌이 돼야 할 광주·전남지역 ‘분만 인프라’가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 뚜렷한 인구감소 추세 속에 경영난에 허덕여온 산부인과 병·의원이 줄지어 폐업하고 있다.
20일 광주권 의료계에 따르면 지역에서 가장 큰 북구 운암동 문화여성병원이 경영난으로 인해 이달 말 폐업하기로 했다.
지상 8층 규모의 이 병원은 최근 문화여성병원장 일동 명의로 ‘본원은 지속적인 분만 감소로 인하여 2023년 9월 30일 폐업 예정입니다’라는 글을 홈페이지 등에 공고했다.
2006년 개원 이후 전문의 8~9명 등 특화된 의료진을 구성해 여성 전문병원 역할을 해온 이곳은 그동안 산전 관리·부인과·복강경 클리닉과 함께 산후조리원, 소아청소년과, 문화센터를 골고루 운영해왔다.
일반 산부인과와 차별화한 산모 교육과 개인·가족 분만실 운영 등 출산을 하기에 최적화된 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분만 건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데다 산부인과 특성상 24시간 전문의 등이 3교대 근무를 하는 데 따른 인건비 부담을 더 견딜 수 없어 고심 끝에 문을 닫는 것으로 전해졌다.
저조한 출산율뿐 아니라 낮은 진료비에 비해 월등히 많은 진료업무로 전문의들이 다른 진료과목으로 일명 ‘갈아타기’를 해야 할 처지라는 것이다.
의료계의 산부인과 기피는 전남지역 사정도 마찬가지다.
전체 산부인과 병·의원 가운데 5곳이 올해 들어 자금난 등으로 잇따라 폐업했다. 이로 인해 전남 도내 22개 지자체 가운데 산부인과 병·의원이 아예 1곳도 없는 지자체가 담양 곡성 영암 신안 등 4곳에 달한다.
이에 따라 현재 분만시설을 갖춘 지역 산부인과 병원은 광주 10곳, 전남 54곳에 불과하다.
143만명의 인구가 상주 중인 광주의 경우 인구 10만명당 1곳도 되지 않는 셈이다. 전남지역 상당수 지자체의 임신부들은 가까운 다른 지자체 산부인과까지 ‘원정 검진’과 ‘원정 출산’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을 보면 분만 감소추세는 뚜렷해진다. 광주 0.84명, 전남 0.97명 수준이다. OECD 평균 1.59명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광주는 2018년부터 5년째 0명대를 유지 중이고 전남은 지난해 처음으로 1명대가 무너져 초저출산 현상이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광주 인구는 2014년 147만여명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2022년 말 기준 143만여명으로 줄었다. 1986년 284만명에 달한 전남 인구는 20년 만인 2006년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지던 200만명이 붕괴했다.
이어 2020년 185만명, 2021년 183만명, 2022년 181만명으로 내림세를 보인 전남 인구는 올해 처음 180만명 이하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남 도내 22개 지자체 중 여수, 목포 등 5개 시와 무안군 1곳 등 6곳을 제외한 지자체 16곳이 인구소멸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분만 인프라 붕괴에 따른 인구감소는 개인과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에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인식을 토대로 장기적 관점에서 지원대책을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