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발서 필로폰 나왔지만…유죄→무죄 뒤집은 대법, 이유?

입력 2023-09-19 15:09 수정 2023-09-19 15:23
국민일보DB

차량에서 필로폰 주사기가 발견되고 모발에서 필로폰 성분이 검출돼 마약류관리법 위반죄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대법원이 투약 시점 등을 특정하지 못했다면서 무죄 취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경찰은 2021년 7월 3일 A씨의 필로폰 투약을 의심해 소변과 모발을 압수했다. 경찰이 추정한 투약 의심 시점은 2020년 1~6월 사이였다. 검사 결과 소변에서는 필로폰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으나 모발에서는 검출됐다. 통상 마약 수사시 모발을 3㎝씩 잘라서 투약 시기를 판별하는데 당시 압수된 모발은 4∼7㎝ 길이였다.

이때는 기소를 피한 A씨는 한 달 뒤인 같은 해 8월 1일 서울 도봉구 한 도로에서 무면허 상태로 벤츠 차량을 몰다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했다.

경찰은 이 사건 뺑소니 혐의 수사를 위해 나흘 뒤인 8월 5일 A씨 차량을 압수수색했다가 차 안에서 주사기와 고무호스 등 마약류 투약에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도구를 발견했다. 발견된 일회용 주사기 2개에서는 실제로 필로폰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이후 같은 달 24일 A씨의 마약류 투약을 의심해 모발과 소변을 다시 압수해 검사했다. 이번에도 소변에서는 필로폰 성분이 나오지 않았으나 길이 6∼9㎝ 모발에서는 모근에서 3㎝, 3∼6㎝, 6∼9㎝ 모든 구간에서 필로폰 성분이 나왔다.

검찰은 이에 따라 A씨를 첫 모발·소변 검사 다음 날인 7월 4일부터 A씨 차량을 압수수색한 8월 5일 사이에 알 수 없는 장소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기소했다. 같은 해 7월 2일과 3일, 8월 1일에 무면허 운전을 하고, 사고 낸 후 뺑소니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도 함께 기소했다.

재판에서는 1심과 2심 모두 도주치상 등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로 판단이 엇갈리면서 A씨 형량도 1심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에서 2심 징역 1년 2개월의 실형으로 바뀌었다.

하급심 판단이 엇갈린 가운데 대법원은 1심 손을 들었다. 검사가 최종적으로 제출한 증거만으로 A씨가 마약류를 투약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모발 검사에서 필로폰 성분이 나온 것이 투약 가능성을 뒷받침할 수는 있지만, A씨의 필로폰 투약 시점을 특정하지는 못한다고 봤다.

또한 ▲피고인이 일관되게 필로폰 투약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점 ▲8월 24일 피고인 소변에서 필로폰이 검출되지 않은 점 ▲양쪽 팔 부분에 주사 자국조차 발견하지 못한 점 ▲차량을 피고인이 독점적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해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며 2심 판결을 파기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