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동화’의 한국어판 정본이라고 할 만한 책이 나왔다. 출판사 민음사가 금박을 입한 양장본 2권 세트로 출간한 ‘그림 동화’는 그림 형제가 생전에 출간한 독일어판 7판(1857년)을 번역한 것이다. 독일에서도 인정하는 괴테 연구자이자 경기도 여주에 있는 여백서원 주인으로 유명한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가 김남희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와 공동 번역했다.
지난 18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그림 동화’ 출간 관련 기자 간담회에는 두 번역자와 함께 스위스의 민담·동화 연구자인 알프레드 메설리 전 취리히대 교수도 참여했다. 메설리 전 교수는 한국에서도 ‘그림 동화’의 정본이 될만한 번역본이 필요하다며 두 사람에게 번역을 권했고 자문까지 맡았다.
스위스 현지에서 간담회에 응한 메설리 전 교수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번역으로 ‘그림 동화’를 읽을 수 있게 됐다”고 출간 의미를 평가하면서 “한국에서 ‘그림 동화’를 번역할 적임자로 두 분만큼 유능하고 경험 많은 번역가를 바랄 수 있을까. 두 분의 번역은 정확할 뿐 아니라 읽기에도 아주 친숙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림 동화’는 18세기 독일 언어학자인 야코프 그림·빌헬름 그림 형제가 14년간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민담 200가지를 정리한 책이다. 그림 형제는 1권은 1812년, 2권은 1815년에 출판한 후 여러 차례 개정했다. 라푼첼, 백설공주,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등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200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며 디즈니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전영애 명예교수는 ‘그림 동화’에 대해 “들꽃 같은 원형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 또 자연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서 “무엇보다 민중의 눈높이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우리 눈높이로 다가온 삶의 지혜이기 때문에 영원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남희 교수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라며 “종교 얘기도 있고, 도덕 얘기도 있고, 자연에 대한 얘기, 삶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고, 시적이기도 하고 투박하기도 하다. 모든 게 다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림 동화’는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니다. 알프레드 전 교수는 “독일어권에서 루터의 성경 번역 이후 두 번째로 중요한 역할을 한 책”이며 “동화라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전영애 명예교수는 “동화는 모든 걸 받아들인다”면서 “동화를 읽는 효과는 사람들이 관용을 갖게 만드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고 얘기했다.
어른들에게 추천할 만한 이야기를 꼽아달라는 주문에 전 명예교수는 “맨 처음에 나오는 ‘개구리 왕’ 이야기를 좋아한다”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에 대해 너무나 많은 지혜를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김남희 교수는 ‘게으른 하인츠’ 이야기를 추천하면서 “첫 문장이 ‘하인츠는 게을렀다’로 시작되는 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말했다. 또 “‘다트마르센의 황당무계한 이야기’에는 ‘창문 좀 열어, 거짓말이 날아가 버리게’란 문장이 나온다. 되게 생생한 표현이다”라고 덧붙였다.
새 번역본에는 그림 형제의 삽화가로 유명한 화가 오토 우벨로데의 삽화 400여점을 수록했다. 빌헬름 그림이 작가인 베티나 폰 아르님에게 쓴 편지, 그림 형제의 서문도 들어 있다. 그림 형제가 민담을 수집하게 된 이유, 자신들에게 많은 동화를 들려준 ‘동화 할머니’ 도로테아 피만와의 만남 등에 대해 알려준다.
메설리 전 교수는 ‘그림 동화’를 즐기는 방법으로 ‘1일 1편’을 제안하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는 짧고 어떤 이야기는 길다. 하루에 한 편씩 읽어나가면 나라는 존재와 세상에 대해 좀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