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최말자 사건과 정당방위

입력 2023-09-17 17:31

1964년 5월 6일 오후 8시쯤 경남 김해시의 어느 마을 큰길에서 한 남성이 당시 18세 여성 최말자 씨를 넘어뜨리고 입을 맞추려 시도하자 최씨는 남성의 혀를 물어 1.5cm가량 절단했다. 이 사건으로 최씨는 중상해죄로 기소돼 최종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씨는 최근에 정당방위가 인정되어야 한다며 재심을 청구하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형법 제21조 제1항에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해 정당방위를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월 동안 우리의 수사기관과 법원은 정당방위 인정에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누군가 먼저 시비를 걸고 폭행을 시작해서 방어할 목적으로 가볍게 맞대응을 해도 ‘쌍방폭행’으로 결론을 냈다. 지하철역 10m 이내 금연구역에서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가던 20대 여성이 담배를 피우던 50대 남성에게 ‘담배 좀 꺼 주세요’라고 말했다가 뺨을 맞자 손으로 밀쳤던 사건의 결말도 쌍방폭행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최근 여기저기서 포악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해 국민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만약 공권력이 범인을 제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난동을 부리는 범인을 제압한 시민이 쌍방폭행으로 처벌된다면 누가 나서겠는가.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하여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할 때가 됐다. 다행히 최근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5월 24일, 예리한 흉기에 급습당한 남성이 계속해서 자신을 찌르려고 다가오는 흉기범을 걷어차 쓰러뜨렸다. 이 남성은 쓰러진 흉기범을 한 번 더 걷어찼고, 흉기범이 의식을 잃자 흉기를 빼앗았다. 경찰은 이 남성에게 ‘상해죄’가 인정된다고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남성의 가해행위가 “부당한 신체 침해에 대항하기 위해 이뤄진 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불기소처분을 하였다.

검찰이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헌법재판소가 정당방위라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2021년 집에서 남편과 다투다가 남편의 팔을 한 차례 할퀴어 다치게 한 사건에서 검찰은 남편에게 상해죄로 기소유예처분을 하면서 아내에게도 폭행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하였다. 기소유예란 범죄혐의는 인정되지만, 검사가 여러 사정을 고려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을 말한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 의견으로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폭행당해 끌려가자 손을 떼어내려는 과정에서 남편의 팔을 할퀸 건 폭행을 회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수단”이라고 판단하고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다.

자기방어의 권리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가지는 자연권이고, 자신의 생명권을 스스로 보호하는 것은 인류 보편의 요청이다. 법이 불의를 저지른 사람을 오히려 보호하고, 정의와 불의가 뒤섞이는 상황이 발생해서야 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정당방위 인정 범위를 확대하려는 시도를 환영하고, 최씨의 재심청구에 대한 대법원의 전향적 판결도 기대한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