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나와 마이스키, 제자는 지휘하고 스승은 연주한다

입력 2023-09-17 10:58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와 그의 제자인 지휘자 장한나가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홀에서 11년 만의 국내 협연 관련 기자간담회를 갖고 소감을 밝혔다. 크레디아

“9살의 첼리스트 장한나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지휘자 장한나도 제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장한나는 관객의 귀와 눈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특별한 재질을 가진 지휘자입니다.”(미샤 마이스키)

첼로 거장 미샤 마이스키(75)와 그의 제자로 현재는 지휘자인 장한나(41)가 국내 무대에 함께 선다. 두 사람은 디토 오케스트라와 함께 17일 전북 전주를 시작으로 19일 대전, 21일 경주, 23~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펼친다. 2012년 앱솔루트 클래식 공연 이후 11년 만에 한국에서 협연하는 두 사람은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소감을 밝혔다.

장한나는 “이번 한국 투어는 의미가 크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많은 의논을 거쳐 완성된 투어”라며 “이번 투어는 음악가로서 길을 열어준 마이스키 선생님을 비롯해 터닝포인트가 된 순간 함께했던 작곡가 드보르자크와 베토벤이 모두 모였다”고 말했다.

마이스키는 1992년 내한 콘서트에서 장한나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연주 후 사인회에서 장한나의 아버지가 딸의 연주 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건넸고, 이를 본 마이스키가 이듬해 마스터클래스에 장한나를 초청하면서 평생의 사제관계가 시작됐다. 그리고 장한나는 1994년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하며 첼리스트로 활약했다. 2007년 장한나가 지휘자로 전향한 후에도 두 사람은 지휘자와 연주자로서 음악적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한나의 연주를 처음 들은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개인적으로 ‘환생’을 믿는데, 그 작은 소녀에게서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후로도 함께 무대에 오를 때마다 특별한 감정을 느꼈죠.”(마이스키)

“선생님은 진지하게 저를 가르치셨어요. 연주자는 음악을 해설하는 사람이고, 해설은 악보에 기반해야 하고, 악보에는 작곡가의 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 그러므로 음표가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들을 해주셨죠.”(장한나)

장한나는 첼리스트로서 정상에 오른 이후 지휘자로 전향해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2017년 9월부터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를, 지난해 9월부터 함부르크 심포니의 수석 객원 지휘를 맡고 있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쾰른 필하모닉, 비엔나 심포니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등 지휘자로서 각광받고 있다. 다만 마이스키로서는 유일한 제자였던 장한나가 첼로를 그만둔 것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마이스키는 “한나가 지휘자가 되기 위해 첼리스트로서의 커리어를 희생했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럼에도 한나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한다. 한나가 지휘자로서도 뛰어난 활동을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나가 첼리스트로 돌아와 함께 슈베르트의 첼로협주곡을 함께 연주하고 녹음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스승 마이스키의 따뜻한 격려에 장한나는 “미샤 선생님은 언제나 악보 앞에서 겸허하신 분으로 늘 존경하고 있다”면서 “내가 첼리스트로서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여러분이 연주자로서 기억하던 내 모습이 될 때 보여드리겠다”고 웃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