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반복해서 담임 교체 요구…대법 “교권 침해”

입력 2023-09-14 15:18
국민일보DB

자신의 아이에게 ‘레드카드’를 주고 청소를 시켰다는 이유로 담임교사를 8번 교체해 달라고 요구한 학부모 행위가 교권 침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자격을 갖춘 교사의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재량에 따른 교육 활동을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간섭해선 안 된다는 법리를 처음으로 판시한 판결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4일 초등학교 2학년생 학부모 A씨가 교육 당국을 상대로 낸 교권보호위원회 조치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고가 반복적으로 담임 교체를 요구한 행위는 교육 활동 침해행위인 ‘반복적 부당한 간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A씨는 2021년 7월 학교장으로부터 “교육 활동 침해 행위인 반복적이고 부당한 간섭을 중단하라”는 권고를 받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사건은 A씨의 자녀 B군이 2021년 4월 수업 중 물병으로 장난을 치다가 ‘레드카드’를 받은 것에서 비롯됐다.

담임교사 C씨는 B군이 주의를 줬음에도 반복해서 장난을 치자 생수 페트병을 빼앗은 뒤 칠판의 레드카드 부분에 B군의 이름표를 붙였다. 또 방과 후에 10여분간 교실 바닥을 청소하게 했다.

이 사실을 안 A씨는 2021년 4월 20일 교무실을 찾아가 교감에게 “학생에게 쓰레기를 줍게 한 것이 아동학대”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담임 교체를 요구했다.

이후 같은 해 4월 23일 교감과 또다시 면담하며 담임 교체를 언급했고, 5월 3·6·7·12·17·18일에도 교육감 및 여러 기관에 민원을 제기해 담임을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또 남편과 함께 교실로 찾아가 교사 C씨에게 직접 항의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기도 했다.

이로 인해 담임 교사는 스트레스로 인한 일과성 완전기억상실증세를 보여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입원했다. 불안 및 우울증으로 병가를 내기도 했다.

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해 A씨의 행위가 교육 활동 침해행위라고 의결하고, 담임 교사에 대한 ‘심리상담 및 조언, 특별휴가’ 보호조치를 권고했다.

A씨에게는 ‘교육 활동 침해행위인 반복적 부당한 간섭을 중단하도록 권고함’이라는 침해자 조치 내용의 통지서를 발송했다. 이에 A씨는 해당 통지서의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패소했지만 2심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었다. 레드카드 제도가 부적절하며 A씨 행위가 ‘반복적이고 부당한 간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을 규정한 헌법 31조를 근거로 “적법한 자격을 갖춘 교사가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재량이 존재하는 영역인 학생에 대한 교육 과정에서 한 판단과 교육 활동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존중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단체나 학생 또는 그 보호자 등이 이를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부모 등 보호자는 자녀의 교육에 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나 이러한 의견 제시도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장되는 것으로서 정당한 자격을 갖춘 교사의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재량에 따른 판단과 교육 활동에 대해서는 이를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간섭하여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최초로 판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