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군사 협력을 강화하면서 미국 중심의 서방 동맹 공조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이미 서방 제재로 고립된 두 국가의 밀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다음 주 시작되는 제78차 유엔총회가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3일(현지시간)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통한 무기 거래 합의 가능성에 대해 “북한과 러시아의 공조는 명백히 유엔 안보리 다수의 결의 위반”이라며 “우리는 응분의 책임과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나라 공조하고, (거래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이들 나라는 나머지 세계로부터 더욱 고립되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급증하는 북러 간의 군사 관계에 대해 분명 우려를 가지고 있다”며 “지구상 어느 나라나 누구도 푸틴이 무고한 우크라이나인을 살해하는 것을 도와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들이 일종의 무기 거래를 추진하기로 하면 우리는 분명 그에 대해 조처를 할 것”이라며 “북한에는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분명히 후과(後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가 자신도 찬성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할 (무기 개발) 프로그램과 관련해 북한과 협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우려스럽다”며 “적절한 경우 양쪽 모두에 대한 제재 부과를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보리 결의 준수는 가장 중요하다. 북한과 협력하려는 모든 나라는 대북제재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동맹을 결집한 공동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 석좌와 엘런 킴 선임연구원은 “한·미·일 3국 군사훈련 등 캠프 데이비드 약속 이행을 기대할 수 있다”며 “미국은 주요 7개국(G7)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보다 광범위한 행동 지향적 합의를 구축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서방의 제재 경고가 북러 간 무기거래를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북한과 러시아 모두 이미 강력한 서방 제재로 고립된 상황이어서 추가 조치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푸틴은 스스로 투표한 유엔 제재를 위반하는 대규모 무기 거래를 체결하기로 하는 등 (유엔 체제의) 스포일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표도르 루키아노프 러시아 크렘린 외교·국방 자문위원장도 현지 매체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와 인터뷰에서 “서방은 이미 (우리를 처벌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해 냈다”며 “우리와 북한 모두 더는 잃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다음 주 시작되는 유엔 총회에서 양측 비난전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19일부터 일주일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되는 이번 회의에는 193개 회원국 대표가 총회장 연단에 올라 연설한다. 이 자리에서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 문제를 비판하며 아프리카나 중남미 국가들을 자극해 반서방 연대 확대를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이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도 주목된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번 북러 회담에 관해 “양국 간 합의”라며 말을 아꼈는데, 존 에버라드 전 북한 주재 영국 대사는 “조용한 반응 같지만 정색한 표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러시아가 1순위라고 말한 것은 중국을 고의로 모욕하고 심기를 건드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CSIS는 “북러 간 군사협력 강화에 반대하는 국제사회가 시진핑 주석에게 대북 영향력 행사를 압박할 수 있지만, 이 경우 북·중 관계는 단절되고 북러가 더 밀착할 수 있다”며 “새로운 북러 축은 중국에 딜레마”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북러 협력이 첨단 무기기술 거래에까지는 도달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AP통신은 분석가들을 인용해 “러시아는 중국과 같은 핵심 파트너에게도 중요한 무기 기술을 항상 철저히 보호해 왔다”며 “러시아가 이를 북한과 공유할 의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커비 조정관은 북러 간 구체적 합의에 대해 “추정하고 싶지 않다. 긴밀히 지켜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두 나라는 다른 국가들과 잘 협력하는 국가들이 아니며 서로에 대해 믿음과 신뢰가 없다”며 “서로 무엇을 원하고 얻을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