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눈물로 구한 자유···‘프리 철수 리’에 담긴 헌신은 뜨거웠다

입력 2023-09-13 17:00
다큐멘터리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 컷. 커넥트 픽쳐스 제공

1973년, 한인 이민자 이철수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일어난 중국인 갱단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재판부는 아시아인 외모를 구별하지 못하는 백인 목격자의 증언만으로 종신형을 선고했고, 이 사건은 당시 한인 최초의 미국 신문사 기자 이경원의 취재로 세상에 알려진다. 이 기자와 함께 구명 운동의 중심에 섰던 유재건(전 CGNTV 대표, 변호사) 장로는 당시 한인교회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며 소송을 준비한다. 이후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재심’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프리 철수 리’운동은 재미 아시아계 커뮤니티로 들불처럼 번졌다. 다음 달 18일 개봉을 앞둔 영화 ‘프리 철수 리’(하줄리, 이성민 감독)가 스크린에 펼쳐 보일 이야기다.

영화는 미국에서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았던 21살의 한인 이민자 이철수와 그를 구명하기 위해 ‘철수에게 자유를’이라고 외치며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을 다큐멘터리로 풀어낸다. 재미교포 2세이자 기자 출신인 두 감독은 1970~80년대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자유와 인권을 위한 구명운동이 잊히지 않도록 영화 제작에 나섰다. 잊히지 말아야 할 점은 또 있다. 그 과정에서 파도처럼 일어난 아시아인 커뮤니티의 중심에 한인 교회와 성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국내 ‘이철수 구명운동’의 주역이었던 이문우 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가 13일 서울 중구의 한 콘퍼런스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철수 석방을 호소하며 작성했던 진정서와 유재건 장로와 주고 받았던 편지를 보여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13일 서울 중구의 한 콘퍼런스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국내 ‘이철수 구명운동’의 주역이었던 이문우(86) 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는 “처음 소식을 들은 뒤 연합회 차원에서 ‘이철수를 위해 기도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 후 ‘탄원서 전달’ ‘격려 편지 발송’ ‘후원금 모금’ 등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운동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당시 미국교회여성연합회, 미국감리교연합회와도 활발하게 교류했던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서한과 전화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철수 사건의 재심을 촉구했다.

이 총무가 이날 보여준 사진엔 지난 1979년 1월 11일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예배당에서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철수씨의 석방과 관련된 1차 결심 공판을 열하루 앞둔 날이었는데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순간이 생생하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철수씨의 이야기를 영화로 소개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고 했다.

이 총무는 “당시에도 한국교회가 여러 교단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모든 것을 초월해 누명 쓴 우리 민족 철수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됐다”며 “오늘날 한국교회도 이 같은 하나됨이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 컷. 커넥트 픽쳐스 제공

다큐멘터리는 구명 운동에 참여했던 각계각층의 인터뷰와 법정 기록, 슬라이드 필름, 당시 작성된 기사 등의 자료가 총망라되며 사건을 촘촘하게 재구성한다.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철수의 이야기는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드러낸다. 10년간 누명 옥살이 끝에 석방이 결정되던 날 한인 교민들이 애국가를 부르며 기뻐하는 장면은 감격과 뭉클함을 선사한다. 동시에 사회적 소수자들의 긍휼을 향한 연대와 용기가 무엇인지 조명하며 감동을 준다.

지금도 우리 사회엔 또 다른 이철수가 함께 살아간다. 다문화 가정, 싱글맘, 입양아, 북한 이탈 주민, 재소자 자녀 등 ‘사각 지대’에 놓인 이들을 향한 시선은 50년 전 이철수가 미국 사회에서 받았던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총무는 “국내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자녀들이 학교에서 따돌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그들이 철수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온기를 실천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기자간담회를 주관한 남기웅 커넥트픽쳐스 대표가 영화 '프리 철수 리'의 시대적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간담회를 주관한 남기웅 커넥트픽쳐스 대표는 “사회적 정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청년세대에게도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며 “기도와 헌신으로 시작된 이철수 구명운동 이야기가 한국 사회와 교회에 깊은 울림을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승소 확률 1만분의 1의 재판’ ‘부활한 사형법에 따라 캘리포니아주 첫 번째 사형수가 될 위기에 처한 한국인’ ‘미국 사회 내 숨죽인 채 살아가던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숭고한 저항의 역사’로 기록된 다큐멘터리 ‘프리 철수 리’가 우리 사회에 감동과 함께 의미 있는 동력을 선물할지 기대를 모은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