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대장’으로 악명 높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4년5개월 만에 이뤄진 재회에서 회담장을 먼저 찾아 기다리는 성의를 보였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13일 낮 12시30분(현지시간‧한국시간 오전 11시30분) 자국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찾았다. 김 위원장은 오후 1시쯤 도착했다. 푸틴 대통령이 30분가량 먼저 도착해 김 위원장을 기다린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수행원, 우주기지 관계자,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김 위원장을 기다렸다. 때때로 지은 옅은 미소가 스푸트니크통신을 포함한 러시아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한국‧미국‧일본’과 ‘북한‧중국‧러시아’의 두 진영으로 갈라진 동아시아 안보 판세에서 북한을 중요한 동맹으로 여기는 푸틴 대통령의 기조를 김 위원장을 마중하는 표정에서 엿볼 수 있다.
차량에서 내린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과 웃으며 40초간 악수했다. 푸틴 대통령은 “만나서 기쁘다. 이곳이 우리의 새로운 우주기지”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바쁜데 초대해줘 고맙다”고 화답했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지각으로 악명을 높여왔다. 2014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를 만날 때 4시간15분, 2018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와 회담에서 2시간30분이나 지각했다. 우리 정상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 앞에 1시간45분, 2018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 앞에는 50분을 늦었다.
푸틴 대통령의 상습적인 지각을 놓고 정상회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심리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대로 푸틴 대통령이 회담장에 먼저 나와 기다리면 ‘상대국 정상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식의 추측을 불러오기도 한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5개월 뒤인 지난해 7월 러시아‧이란‧튀르키예 3국 정상회담을 위해 찾아간 이란 테헤란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앞두고 44초간 기다렸다.
당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차단된 러시아의 입장에서 튀르키예는 중요한 대외 창구 중 하나였다. 푸틴 대통령은 1분 남짓한 시간을 기다리면서 초조한 표정을 지어 주목을 끌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날 때 주도권과 관계없이 먼저 회담장으로 나와 마중했다. 이날 재회에 앞서 가장 최근 북‧러 정상회담을 가진 20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 극동연방대 회담장에서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보다 25분 먼저 도착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