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위기 동북아 확장… 美 “국제 왕따 북에 지원 구걸”

입력 2023-09-12 06:22 수정 2023-09-12 07:55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무기 거래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유럽발 안보 위기를 동북아로까지 확장했다. 특히 미국에 대항하는 북·중·러 군사 연대를 강화해 서방 중심의 다자 제재 한계를 노출하려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쟁 장기화를 유도해 서방 동맹의 균열을 조장하고, 안보 위기 지형을 확대해 미국의 억지력을 분산시키려 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북러 무기 거래 최종 단계”

에이드리언 왓슨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11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관련한 국민일보 질의에 “공개적으로 경고했듯 북러 간 무기 (거래) 논의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거나 판매하지 않겠다고 한 공개적인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을 ‘국제적 왕따’라고 지칭하며 “러시아가 지원을 구걸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어떤 무기 이전도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북한에 새로운 제재를 부과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 박 미 국무부 부차관보 겸 대북정책부대표는 이날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북러 정상회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쓸 상당한 양(significant quantity)이자 여러 종류의 탄약을 지원받는 무기거래 최종 단계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부대표는 두 정상 간 거래에 북한이 러시아 방위산업에 사용될 원자재를 제공하는 방안도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부대표는 “김 위원장이 역내 두 파트너(중·러)에 의존하는 정도를 보여준다”며 “이는 한·미 양국의 결의를 강화할 뿐”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북한에 152㎜ 자주포, 107㎜·122㎜ 방사포 등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정보국 출신인 브루스 벡톨 안젤로 주립대 교수는 “러시아 무기와 즉시 호환할 수 있는 군수품으로 구식 무기를 사용하는 러시아군에 매우 유용하다”며 “(북한 지원품에는) 다른 여러 소형 무기와 로켓 시스템, 소련 디자인을 모방한 탱크와 장갑차까지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잭 와틀링 영국 왕립연합군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러시아는 북한이 비축한 상당한 양의 탄약뿐만이 아니라 북한의 지속적인 생산 능력에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장기화할 수 있는 일종의 병참기지 역할을 수행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거꾸로 북한은 식량과 에너지, 외화 등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정찰위성 등 첨단무기 기술 지원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맹 균열’ ‘안보 위기 확대’ 이중포석

김 위원장의 이번 방러는 4년 전인 2019년보다 파괴력을 지녔다. 당시 북한은 북·중·러 연대를 강화하며 제재 해제와 체제 보장을 주장하고, 북핵 논의 틀을 6자 회담으로 확대하려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와 담판이 교착에 빠지자,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판을 흔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는 미국 중심의 서방 동맹 견제 전선 빈틈을 노렸다. 무기 지원을 통한 전쟁 장기화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서방 동맹의 균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내부에서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이 과도하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전쟁이 내년 대선 국면과 맞물리면 이런 여론이 조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

AP통신은 “전쟁이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미국과 파트너 국가에 (정전) 협상을 추진하도록 하는 더 많은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 지원을 통한 무기개발을 통해 동북아 안보 위기도 고조시킬 수 있다.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는 “푸틴은 미국이 유럽에서 취한 조치가 역내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에서도 미국의 이익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며 “북러 군사 동맹 강화의 전술적 이점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와 한반도에서 억제력을 강화하려는 미국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AP통신도 “이번 정상회담은 외교적 고립을 깨고 대미 공동 전선 일부가 되고자 전통적 동맹국인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관계에 가시성을 높이려는 김정은의 노력”이라며 “러시아의 기술 이전 가능성은 북한이 한·미·일을 겨냥해 축적하고 있는 핵무기와 미사일로 인한 위협을 증가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CSIS 산하 북한 전문 매체인 ‘분단을 넘어’는 북한이 최근 전술핵공격잠수함이라며 ‘김군옥 영웅함’을 공개한 것에 대해 “다음 단계는 전 세계를 향해 이 잠수함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형 잠수함을 통한 SLBM 발사 도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러시아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혹은 탄도미사일 발사 재래식 잠수함(SSB) 기술 이전을 요청할 수 있다”며 북한의 미사일 기술 향상이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가속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 레베카 코플러도 “러시아가 핵무기와 우주발사, 미사일 기술 분야 노하우를 북한과 공유하는 건 미국에 좋은 일이 아니다. 이 두 적이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상황은 더 악화한다”며 “북한이 최근 신형 잠수함을 공개한 건 우연이 아니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