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나쁜 일 아니죠?”…범죄 막은 택시기사의 ‘촉’

입력 2023-09-11 09:34 수정 2023-09-11 10:23

경찰은 적극적인 대처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수거책을 잡은 택시기사 A씨에게 표창장과 신고 포상금을 수여했다고 11일 밝혔다. A씨는 과거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범죄자를 승객으로 태웠다가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6일 오후 4시50분쯤 택시 호출 앱을 통해 전북 남원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콜을 잡았다. A씨는 호출 앱이 지정한 출발 위치인 남원시 동충동으로 차를 몰았다. 해당 위치로 가니 한눈에 봐도 앳된 승객이 가방을 좌석에 먼저 내려놓고는 택시에 올랐다.

A씨는 흔치 않은 장거리 호출에 딸뻘보다도 어린 승객에게 “대전 어디로 가세요?”라고 물었지만, 승객은 아무 말이 없었다. A씨는 “무슨 일로 대전까지?”라고 되묻다가 승객 옆에 놓인 가방을 수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2년 전 남원에서 순창으로 향하는 승객을 태웠다가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일을 떠올렸다. 그 승객은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범죄자였다.

A씨는 승객과 가방을 한 번씩 바라보며 “학생, 나쁜 일로 가는 거 아니죠?”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대답이 없던 승객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문을 열고 택시에서 내리려고 했다. 기사는 곧장 차 문을 잠그고 인근 지구대로 택시를 몰았다. 지구대에서 나온 경찰관들은 A씨의 말을 듣더니 승객이 지닌 가방을 확인했고, 그 안에는 현금 2000만원이 있었다.

20대인 이 승객은 광주 등지에서 보이스피싱 조직 지시를 받고 현금을 수거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파악됐다. 택시 또한 현금을 건네받기 위해 조직에서 앱을 통해 불러 준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예전에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보이스피싱을 막을 수 있었다는 후회와 죄책감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며 “이번에는 수거책을 검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뿌듯하고 한편으로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잡은 승객을 사기 혐의로 입건하고, 현금 수거를 지시한 보이스피싱 조직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