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동하고 1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추가 지원 계획을 밝혔다.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열화우라늄탄 등 무기 지원 계획도 담겼다. 우크라이나 반격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북한, 중국 등 국가들과 밀착을 강화하자 이에 대응한 강력한 지지를 보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블링컨 장관은 6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6억6550만 달러의 군사 및 민간 안보 지원 등 우크라이나에 10억 달러 이상의 추가 지원을 발표한다”며 “우리는 러시아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 총 430억 달러 이상의 안보 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1억7500만 달러 상당의 안보 지원 패키지에는 에이브럼스탱크와 이에 장착될 120㎜ 열화우라늄탄 등 무기가 포함됐다. 열화우라늄탄은 우라늄 농축 과정에서 발생한 열화우라늄을 사용한 전차 포탄으로, 먼 거리에 있는 적의 장갑차나 전차의 철판을 빠른 속도로 뚫을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폭발시 발생되는 방사성 먼지와 독성물질로 인체와 환경에 악영향을 미쳐 ‘더티 밤’(dirty bomb·더러운 폭탄)으로 불린다. 미국이 열화우라늄탄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건 처음이다.
미국은 고속 기동 다연장 로켓인 하이마스 로켓 발사 시스템, 대전차 공격용 재블린 미사일도 제공한다. 블링컨 장관은 우크라이나 반격에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히는 지뢰 제거와 관련한 중대 지원도 이번 패키지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주요 20개국(G20) 회의 참석차 인도를 방문하는 출장길에 우크라이나를 찾았다고 한다. 블링컨 장관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지금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반격에서 중요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이는 매우, 매우 고무적”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입장을 강하게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큰 단결을 보여준 초당적 지지에 감사하다”며 “우리는 힘든 겨울을 앞두고 있지만, 혼자이지 않아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키이우 맥도날드 매장을 찾아 감자튀김을 함께 먹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블링컨 장관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전쟁 장기화를 준비하는 러시아를 겨냥한 행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방 동맹은 미국이 내년 대선을 향해 가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국내 정치에 점점 더 제약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 지원이 곧 끊길 것으로 계산하고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장기적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7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안보 지원을 금지하자는 제안에 공화당 하원의원 3분의 1 가량인 70명이 동의했다고 WSJ은 전했다.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제공받을 경우 우크라이나 반격은 더 큰 장애에 직면할 우려도 있다. 존 커비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국무부 외신센터 브리핑에서 “북한이 러시아와 무기 이전에 개입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지 않기를 다시 촉구한다”며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기로 선택하면 국제사회에서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커비 조정관은 한·미·일 3자 정상회의 이후 북·중·러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들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위협하고 미국을 ‘공동의 적’으로 간주하는 국가들”이라며 “우리는 이들의 관계 강화를 주시하고 있으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