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5000만원 두고 사라진 기부천사 “생활비 아껴 모아”

입력 2023-09-07 06:30 수정 2023-09-07 10:19
익명의 기부자가 남긴 종이편지. 수원시 제공

경기 수원시에서 한 익명의 기부자가 현금 5000만원을 동 행정복지센터에 기부한 사연이 알려졌다.

6일 수원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34분쯤 영통구 광교2동 행정복지센터 2층 민원실에 여성 A씨가 종이봉투와 편지를 놓고 떠났다. 종이봉투 안에는 5만원짜리 현금 5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A씨는 종이봉투에 남긴 편지에서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광교에 살고 있다”며 “생활비에서 아껴 여러 해 동안 적금을 들어 5000만원을 만들었다. 코로나로 어려운 여러 가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기부 목적을 설명했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숨겼다.

동 행정복지센터 측에서 기부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건물 내 CCTV까지 확인했지만 별다른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는 파란색 모자를 눌러 쓰고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직접 도보로 찾아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민원실로 이동한 뒤 현금과 편지가 든 종이봉투만 남기고 같은 동선으로 되돌아나갔다.

당시 근무 중이던 직원들은 종종 간식을 놓고 가는 주민 중 한 명인 것으로 짐작했다고 한다. 종이봉투 안을 살펴본 직원들은 현금을 확인한 뒤 이를 시청 돌봄정책과에 보고했다.

시는 해당 기부자의 뜻을 존중해 성금이 취약계층에 쓰일 수 있도록 이를 수원시사회복지협의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정숙미 광교2동 행정복지센터 민원팀장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기부하는 분은 종종 있는데, 익명으로 놓고 간 경우는 처음”이라며 “평소 행정복지센터를 자주 찾던 주민이라면 얼굴을 가려도 직원들이 금세 눈치챘을 텐데 인상착의가 낯설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익숙한 주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