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길이 형이 잘했대”… 검찰이 공개한 ‘돈봉투’ 증거

입력 2023-09-06 06:49 수정 2023-09-06 10:49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관련자들. 오른쪽 사진부터 윤관석 의원, 이성만 의원, 송영길 전 대표. 뉴시스, YTN 보도화면 캡처

검찰이 2021년 5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에 ‘돈봉투’가 살포된 과정을 송영길 전 대표도 알고 있었다고 판단하는 정황을 법정에서 공개했다. 검찰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이정근(전 민주당 사무총장)씨가 당시 민주당 소속이었던 김남국 의원 등에게 돈 봉투를 건네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하는 대목이 담겨 있었다.

검찰은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2부(김정곤 김미경 허경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의 정당법 위반 등의 혐의 관련 재판에서 돈봉투 사건의 핵심 증거인 ‘이정근 녹취록’을 재생했다. 이 녹취록에는 이정근씨와 강래구씨, 윤관석·이성만 의원 등이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돈 봉투를 살포하는 과정에서 나눈 것으로 추정되는 대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법정에서 공개된 녹음파일에서 강씨는 2021년 4월 10일 이씨와 통화하며 “내가 성만이 형이 연결해 줘서 그거 좀 나눠줬다고 영길이 형한테 말했어. ‘성만이 형이 준비해준 것 갖고 인사했다’라고 하니 ‘잘했네’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강씨는 또 “(송)영길이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는데 많이 처리한 것 같더라”며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다니면서 (금품 등을) 준 것”이라고도 했다.

강씨가 이씨에게 “알았어, 송(영길)한테는 살짝 얘기해줘야지”라고 말한 내용도 녹취록에 담겼다.

검찰은 이 대화를 근거로 “강씨가 이성만 의원에게 받은 자금으로 민주당 지역본부장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실을 송 전 대표에게 보고한 것이 확인됐다”며 “사전 및 사후에 (돈 봉투 살포가) 송 전 대표에게 보고될 정도로, 이 범죄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법정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돈 봉투를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는 윤관석 의원과 이씨의 통화 내용도 공개됐다.

이날 재생된 녹음파일에는 윤관석 당시 민주당 의원이 이씨로부터 받은 3000만원을 현역 의원들에게 전달했다고 이씨에게 직접 알리는 내용도 담겼다.

윤 의원은 4월 28일 오전 다른 의원들과 만난 직후 이씨에게 “아침 회의에는 김남국, 윤재갑 등 4명 정도가 못 나왔어”라면서 “김남국, 윤재갑 이 둘은 또 호남이잖아”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에 “오빠, 거긴(김남국·윤재갑) 해야 해, 호남은 해야 해”라고 재촉했다. 호남이 고향인 김 의원 등에게는 돈봉투를 건네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윤 의원은 또 “인천 둘 하고 종성이는 안 주려고 했는데 ‘형님, 우리도 주세요’라고 해서 3개 빼앗겼어”라며 “다 정리해버렸는데 모자라”라고 알렸다. 이에 이씨가 “어제 그만큼 똑같이?”라고 묻자 “응”이라고 답한다.

검찰은 이후 윤 의원이 같은 날 저녁 송 전 대표 캠프 사무실에서 추가로 3000만원을 받아 이튿날 의원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추가로 3000만원을 받았다고 지목한 날 윤 의원이 송 전 대표를 면담한 정황도 공개했다. 이씨가 강씨와의 통화에서 “윤(관석)은 와서 한참 있다가 송(영길)하고 만나서 30분 이야기하고 갔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윤 의원이) 당초 예정되지 않은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주는 바람에 추가로 금품이 필요해져 이씨에게 요청한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윤 의원은 그해 4월 28~29일 이틀에 걸쳐 동료 의원들에게 3000만원씩 살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윤 의원이 주도한 송영길 캠프 핵심 인사들의 모임인 ‘기획회의’ 구성원 명단도 일부 공개했다.

녹취록에서 강씨는 이씨에게 “(채팅방에) 윤관석, 이성만, 임종성, 허종식, 굳이 더 넣으면 이용빈 정도만 딱 넣어서, 이건 기획 회의방”이라며 “이 방은 가장 중요한 사안에 대해 서로 의견 공유하겠다고 해서, (윤)관석이형 중심으로 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검찰은 윤 의원을 통해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돈봉투를 전달하는 방안이 4월 26일 열린 기획 회의에서 확정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검찰은 강씨가 이씨에게 “권력을 빼앗기면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돈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다” 등의 말을 한 사실도 공개했다. 그러면서 “자금 조달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권력 지향적인 모습이 금권선거를 뒷받침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오는 19일 공판을 열고 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관한 강씨 측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강씨는 2021년 3∼5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송 전 대표를 당선시키려고 윤 의원, 이 의원 등과 공모해 당내 총 9400만원을 살포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지난 5월 구속 기소됐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