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아닌 전시에서 오브제의 배치를 통해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할지 고민했다. 익숙했지만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떠올리며 평상을 소재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5일 서울 종로구 코트에서 열린 제10회 프라다 모드 기자간담회에서 김지운 감독이 자신의 전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준비한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프라다 모드는 패션 브랜드 프라다가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협업하는 행사다. 올해는 국제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처음으로 한국에서 개최됐다. 김지운, 연상호, 정다희 감독은 6일까지 진행되는 ‘다중과 평행’전을 통해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영화적 시선을 제시한다.
연상호 감독은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의 주인공 정진수가 살던 고시원 방을 범죄 현장으로 재현했다. 연 감독은 “전시 장소인 코트를 둘러보며 영감을 받았다. 피맛골과 이어지던 이 장소는 오래된 공간이지만 주변에선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어 과거가 현재에 공존하는 느낌이었다”면서 “지옥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비일상적인 일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일상적인 공간인 고시원에서 비일상성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애니메이션 감독 정다희는 ‘종이, 빛, 유령’을 주제로 공간을 꾸몄다. 정 감독은 “공간에서 영화를 어떻게 체험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영화의 재료인 빛을 활용했다”며 “영화는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고 많은 사람에게 한 번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빛의 특성을 많이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시의 큐레이터를 맡은 이숙경 영국 맨체스터대 휘트워스 미술관장은 “영화는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대중 예술이면서 세대의 감수성을 보여주는 매체, 한국 문화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매체”라며 “세 감독의 상상 속에 있는 세계, 이들이 시대의 현실과 변화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를 담아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선 세 감독이 선정한 영화도 상영된다. 김 감독은 고(故)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1964)을, 연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1997)를, 정 감독은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2023)를 각각 선택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