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는 죽었다” 오세훈, 서울시 바로세우기 2라운드…임옥상 조형물 철거

입력 2023-09-05 13:02 수정 2023-09-05 16:40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등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구 남산 ‘기억의 터’에 설치된 민중미술가 임옥상 화백의 조형물 2점을 철거했다. 오 시장은 “시민단체는 죽었다”고 비판하며 시민단체와의 전쟁 2라운드에 나섰다.

서울시는 5일 임 화백의 조형물 2점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기억의 터에는 임 화백의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2점이 설치돼있었다. 그러나 임 화백은 지난 6월 자신이 운영하는 단체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았다. 그러자 서울시는 임 화백의 작품을 존치하는 건 위안부를 모욕하는 것이라며 철거 작업에 착수했다. 시 관계자는 “기억의 터가 시민 모금 등을 거쳐 조성된 공간이라는 점과 자체 여론조사 결과 등을 반영해 임 화백의 조형물만 철거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전날 정의연 등의 반대 집회로 철거가 무산되자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시민단체는 죽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오 시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단체가 성추행을 인정한 작가의 작품 철거를 막아섰다”며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많은 시민단체가 같은 사안을 두고도 ‘우리 편’이 하면 허물을 감싸주고 ‘상대편’이 하면 무자비한 비판의 날을 들이댄다”며 “오랜 세월 진영논리에 젖어 사고하다 보니 무엇이 상식인지도 모르는 듯하다. 제 시민운동은 우리 편 들기 운동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철거 작업이 마무리된 후 위안부 피해자를 제대로 기릴 수 있도록 조형물을 재조성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광화문역 내 ‘광화문의 역사’, 하늘공원 내 ‘하늘을 담는 그릇’, 서소문청사 앞 ‘서울을 그리다’ 등 임 화백의 작품 6점이 서울시립 시설에서 모두 철거됐다. 오 시장은 앞서 보수 진영의 요구에 따라 서울광장 내 이태원 참사 피해자 분향소 강제 철거를 검토했으나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이번 임 화백의 조형물 철거는 보수 진영의 반 시민단체 여론도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오 시장은 2021년 ” 서울시의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기로 전락했다”며 ‘서울시 바로 세우기’에 착수했었다.

정의연은 “시가 임옥상의 작품을 철거한다는 이유로 기억의 터 조형물을 일방적으로 철거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성추행 가해자의 작품을 철거한다는 명분으로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지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31일 법원에 철거 금지 가처분 소송도 냈지만 각하됐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