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항의하자 “회사생활 힘들어질 것”… 4명 중 1명 직장서 피해

입력 2023-09-03 18:46

직장인 A씨는 출장 중 상사로부터 불쾌한 신체 접촉을 당했다. 상사는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했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A씨가 항의하자 이 상사는 “그럼 같은 부서에 있을 수 없으니, 네가 다른 부서로 가야 한다”며 오히려 A씨를 압박했다. 그러면서 A씨에게 “앞으로 회사생활이 2~3배 힘들어질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도 했다.

직장인 B씨는 워크숍 술자리에서 센터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센터장이 B씨 허벅지에 손을 올린 것이다. 또 다른 팀장은 노래방에서 블루스를 추자며 허리를 잡았다. B씨가 이를 뿌리치자 “왜 그러냐”며 계속 잡아끌며 몸을 밀착시켰다고 한다.

직장인 4명 중 1명은 직장 내 성희롱 등 직장 내 성범죄 피해를 당하고 있지만 정작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2일부터 10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성희롱·성추행·스토킹 등 직장 내 성범죄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직장인 4명 중 1명(26%)은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 내 성희롱 중 대부분은 여성, 비정규직 등 일터의 약자를 향하고 있었다. 응답자 특성별로는 여성 직장인의 성희롱 경험 응답이 35.2%로 남성(18.9%)보다 1.8배 이상 높았다. 또 비정규직의 성희롱 경험 응답은 31%로 22.7%였던 정규직보다 8.3%포인트 높았다.

성희롱 행위자는 ‘임원이 아닌 상급자’가 47.7%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사용자(대표·임원·경영진)’가 21.5%로 그 뒤를 이었다. 성희롱 행위자 성별은 여성 88.2%가 ‘이성’이라 답했고, 남성 42.1%가 ‘동성’이라 답했다.

적지 않은 직장인이 직장 내 성희롱을 겪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 내 성희롱을 겪은 직장인 중 83.5%는 성희롱을 겪은 뒤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답했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응답이 17.3%로 그 뒤를 이었다.

직장 내 성희롱을 당했을 때 신고하지 않은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62.7%가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직장 내에서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경험한 직장인도 15.1%에 달했다. 응답자 특성별로는 여성(24.1%)이 남성(8.1%)의 3배였고, 비정규직(22.3%)이 정규직(10.3%)의 2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여성 비정규직은 29.7%가 직장 내 성추행·성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갑질119 젠더폭력대응특별위원회 박은하 노무사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로 ‘비정규직’이라는 업무 특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특성을 갖는 노동자들이 누구보다 젠더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직장갑질119는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터가 성범죄 무법지대가 됐다”며 “사용자 성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하고 직장 내 성범죄 신고가 들어간 사업장은 특별근로감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접수된 남녀고용평등법 제12조 위반(사업주의 성희롱) 신고 1046건 중 성희롱 인정은 129건으로 12.3%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